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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상황은 달라졌다. 부모는 밀러와 누나를 앉혀놓고 삼촌과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응급구조사(EMT) 훈련을 받은 뉴욕주 대법원 선임 법원 경비관이었던 그의 삼촌은 첫 비행기가 WTC 북쪽 타워를 강타하자 동료들과 현장으로 달려갔다. 화상을 입은 여성을 응급처치한 뒤 동료들과 다시 WTC 안으로 구조에 나섰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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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서 ‘역사’로 넘어가는 9·11
9·11 테러 25주기를 앞두고 이날 9·11 메모리얼 박물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박물관 관계자들이 가장 강조한 것도 세대의 변화였다.
베스 힐먼(Beth Hillman) 9·11 메모리얼 박물관 최고경영자(CEO)는 “내 세대의 많은 사람은 그 끔찍한 날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정확하게 기억한다”며 “하지만 지금 미국인 1억명은 당시 태어나지 않았거나 그날을 스스로 기억하기에는 너무 어렸다”고 말했다. 이어 “매년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다짐은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노아 라우치(Noah Rauch) 박물관 교육·공공프로그램 수석부사장은 이를 ‘기억’과 ‘역사’ 사이의 경계가 움직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공격을 기억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 기억과 역사 사이의 경계선이 점점 이동하는 것을 봐왔다”며 “이번 25주기는 9·11의 이야기와 교훈, 유산이 지금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보존되도록 할 중요한 기회”라고 말했다.
9·11 메모리얼 박물관은 다음 세대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라우치 수석부사장에 따르면 박물관 개관 이후 교육 프로그램과 자료를 접한 학생은 약 2000만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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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추모식에서는 9·11 당일 주요 사건이 발생한 시각에 맞춰 여섯 차례 묵념해왔다. 올해부터는 9·11 관련 질병과 부상으로 숨진 사람들을 기리는 일곱 번째 묵념이 추가된다.
9·11의 희생이 2001년 9월11일 하루에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밀러의 가족도 그 후유증을 겪었다. 그의 한 친척은 테러 이후 몇 주 사이 로어맨해튼으로 돌아가도 안전하다는 안내를 받고 업무에 복귀했다. 현장 주변에 남아 있던 먼지와 유독성 공기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그는 이후 백혈병을 앓다가 2016년 세상을 떠났다. 밀러는 “지난 세월 동안 나는 9·11의 결과가 2001년 9월11일에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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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 25주기를 맞아 새롭게 선보이는 특별전 ‘그들을 기리며: 9·11이 이끈 25년의 봉사(In Their Honor: 25 Years of 9/11-Inspired Service)’ 역시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언론에 이날 처음 공개된 전시는 오는 12일 일반에 공개된다.
이번 전시는 9·11 당일의 희생뿐 아니라 이후 25년간 봉사와 구조, 재건에 뛰어든 사람들을 조명한다. 밀러는 “그들은 봉사하기로 했고, 재건하기로 했으며,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을 돕기로 했다”며 “많은 사람이 지난 25년 동안 바로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9월11일 우리가 잃은 사람들뿐 아니라 9월12일, 그리고 그 이후 매일 행동에 나선 사람들을 기억할 기회”라고 강조했다.
힐먼 CEO 역시 이를 ‘9·12의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서로 다른 배경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애국심과 단결의 정신으로 함께했던 9·12의 정신을 미국이 기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5년이 흐르면서 박물관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밀러는 “25년이 지난 지금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 전체가 존재한다”며 “이들에게 9·11은 역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9·11 메모리얼 박물관과 같은 장소가 해가 갈수록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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