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민 기자] 여의도 증권가의 한 임원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출발하려는 순간 인터뷰를 취소해야겠다는 다소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이유인즉슨 이날 오전에 회사로부터 다음 임기 계약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임기가 아직 한 달여 남긴 했지만 그 전화를 받은 이상 인터뷰를 하기가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 부랴부랴 일정을 조정했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그 임원이 해당 증권사로 이직한 지는 만 4년이 채 안 됐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 여의도 금융투자업계에서 임원들이 임기를 재연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하물며 최고경영자(CEO)들의 수명은 더욱 짧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임기를 마치기가 무섭게 교체되거나 혹은 임기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업경영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21개 국내 주요 증권사 가운데 현재 5년 이상 재임중인 CEO는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서태환 하이투자증권 사장, 권용원 키움증권 사장, 최희문 메리츠종금증권 사장 등 한 손으로 꼽을 수준이다. 재임하는 경우가 그만큼 드물다는 뜻이다. 상법상 CEO의 임기는 3년이지만, 대부분 증권사는 정관에 CEO 임기를 1년이나 2년으로 못박고 있다. 실적이 부진하거나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계약을 끝내겠다는 뜻이다. CEO의 재임이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단기간 성과만으로 CEO 교체 카드를 내미는 것은 기업의 연속성을 해칠 수 있다. 실제 외국계 기업들은 한국 금융사들에 일감을 맡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잦은 CEO 교체를 꼽기도 한다.
장수 CEO가 수장으로 있는 증권사들의 실적은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같은 CEO가 현재 8년째 이끌고 있는 한국투자증권은 4년 연속 업계 최대 규모 이익을 달성했고 7년차에 접어들고 있는 키움증권(039490)은 지난 2분기 분기 기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1~2년 정도만 보장된 임기라면 중장기적인 계획을 짜기보다는 단기 성과에 급급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투자 철학이 분명해야 하는 금융투자업계에서 보다 큰 그림을 그려가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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