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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압박에 학부모 눈치보기…진퇴양난에 빠진 자사고

신하영 기자I 2019.04.04 17:05:25

학생 선호도 하락…서울 자사고 경쟁률 1.7대1→1.3대1
경문고·대광고·세화여고·숭문고 등 4개교 입학정원 미달
자사고 폐지 교육당국 압박에 고교무상교육 제외 가능성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 소속 교장들이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성고등학교에서 ‘2019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의 부당성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신하영·신중섭 기자] 자율형사립고(자사고)가 교육당국의 폐지 압박과 학생 선호도 하락으로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 재정 지원이 없는 자사고는 학생들이 지원하지 않으면 등록금 수입 감소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입학 경쟁률이 저조한 자사고는 내심 일반고 전환을 바라지만 학부모 반발이 워낙 커 이를 실행하기 어렵다. 서울지역 자사고 13곳이 재지정 평가를 놓고 교육당국과 대치하는 것도 학부모 눈치 보기란 분석이 나온다.

4일 교육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자사고들의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교육당국이 자사고 폐지를 압박하고 있고 대입 수시비중 확대 등으로 학생 지원이 감소하고 있어서다. 서울지역 자사고 13곳이 운영성과 보고서 제출까지 거부하며 평가거부에 나선 배경에도 이런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 자사고 선호도 눈에 띄는 하락세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최근 초·중학생 학부모 7880명을 대상으로 고교 유형별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자사고의 하락세가 뚜렷했다. 자사고에 대한 선호도는 2017년 51.7%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48.4%, 올해 40.7%로 하락했다. 오종운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자사고의 존폐 자체가 불투명하고 학부모 불안심리가 확산하면서 선호도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자사고 선호도 하락은 입학 경쟁률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지역 자사고 22곳의 경쟁률은 2017학년도 1.7대 1에서 2019학년도 1.3대 1로 하락했다. 특히 경문고·대광고·세화여고·숭문고 등 4곳은 지원자가 일반전형 정원에 미달했다.

자사고는 정부 재정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원자 수가 감소하면 등록금 수입에서 타격을 받는다. 더욱이 해마다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어 경쟁률 악화를 개선하기가 쉽지 않다. 학생 충원 난을 겪는 자사고 중에서는 내심 일반고 전환을 원하는 학교가 많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2010년 출범한 자사고는 한 때 전국적으로 54개교가 출범했지만 지금은 42개교만 남았다. 지난해까지 8년간 12개교가 일반고로 전환했다. 서울의 경우 이 기간에 우신고·대성고·동양고·미림여고·용문고 등 5곳이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했다. 대부분 학생 충원난이 재정난으로 이어져 일반고 전환을 선택한 것이다.

◇ 일반고 전환 대성고 학부모 소송까지

올해부터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한 대성고의 경우 2018학년도 입학경쟁률은 0.84대 1에 그쳤다. 일반전형 280명 정원에 지원자가 234명에 그친 것이다. 대성고 관계자는 “한 해 정원 미달로 학교가 존폐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학령인구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장기적으로 심각한 운영난에 직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일반고로 전환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런 위기감은 비단 대성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입학 경쟁률이 0.83대1로 집계된 경문고의 경우에도 일반고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일반고 전환이 고민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학부모들은 자사고가 대입에서 유리할 것으로 생각해 자녀를 보낸 것인데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반발이 클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대성고의 경우 학부모들이 등록금 납부를 거부하는 등 최근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대성고 학생·학부모 385명이 제기한 자사고 지정취소처분 취소소송은 지난달 8일부터 재판이 시작됐다. 서울시교육청은 대성고 학교법인인 호서학원이 재정난을 이유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하자 지난해 9월 이를 승인했다. 올해 대성고 1학년은 일반고로, 2~3학년은 자사고 체제로 운영 중이다.

서울지역 자사고 13곳이 운영성과 보고서 제출까지 거부하며 평가 보이콧에 나선 배경에도 학부모 반발이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자사고 가운데 운영이 어려운 학교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할 경우 학부모 반발을 감당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 자사고 위기론 확산…무상교육 수혜도 제외?

문제는 자사고의 위기감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란 점이다. 대입 수시모집 비중은 이미 70%를 넘어섰고 고교 내신경쟁은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일반고에 비해 성적 우수 학생이 많은 자사고에 대한 매력이 하락하는 이유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수시모집 비중이 큰 지금 상황에서 학생부교과전형의 경우 자사고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자사고는 오는 2학기 고교 3학년부터 도입하는 고교무상교육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인 고교무상교육은 고등학생의 입학금·수업료·교과서·학교운영지원비를 지원, 가계 교육비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다. 교육부는 고교무상교육 재원 확보 방안을 이달 중 발표한다. 현재까지 논의사항을 감안하면 일반사립고와 마이스터고 등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만 자사고·특목고는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고가 정부의 고교무상교육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경우 학생·학부모 선호도는 더 하락할 수 있다. 2017년 학교회계 결산 기준 서울소재 일반고 학부모 부담금은 279만원인 반면 광역단위 자사고의 학비는 720만원으로 일반고에 비해 2.6배나 높다.

정부의 자사고 폐지 압박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자사고는 지난 2009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된 뒤 전국으로 확산했다.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를 내걸고 지난 2009~2010년 사이 서울에서만 27곳의 자사고를 출범시켰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자사고는 정부가 만든 학교이지만 이를 없애려는 것도 정부”라며 “학교 운영자들로서는 자사고 운영에 회의감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지역 자사고 2019학년도 일반전형 신입생 지원 현황(자료: 종로학원하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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