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냉담·내부 동요…택배노조, CJ대한통운 점거농성 ‘반쪽’ 해제

이소현 기자I 2022.02.21 18:04:24

점거 12일째, 3층 풀고 로비만 점거…사측, 전면퇴거 요구
진경호 노조위원장, 물·소금 끊는 아사단식 돌입
“농성자 110명→80명대로 줄어…노조 탈퇴자도”
연대파업도 저울질…비노조택배연합 반발에 ‘노노갈등’

[이데일리 이소현 권효중 기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21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점거 농성을 일부 해제했다. 싸늘해지는 여론과 노조 내부의 동요에 밀려 ‘반쪽’ 점거 해제를 택했다.

하지만 노조 위원장이 자칭 ‘아사단식’에 돌입하고 전체 택배사로 파업을 확대하는 등 투쟁수위를 여전히 높이고 있어 공권력 집행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경찰의 대응과 맞물려 자칫 사태 장기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비노조택배연합은 “택배노조가 모든 택배기사의 밥그릇을 깨부수고 있다”고 노조를 강력 규탄, ‘노노갈등’은 더욱 심화하는 형국이다.

21일 청계광장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주최로 과로사 방지 사회적 합의 이행 등을 요구하는 2022 전국 택배 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
◇3층 점거 풀고 1층 로비에서만 농성…택배노조 위원장 단식 돌입

택배노조는 21일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과로사방지 사회적 합의 이행과 CJ대한통운의 대화 수용을 촉구하며 ‘2022 전국 택배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날 영하의 강추위에도 전국에서 상경한 CJ대한통운을 비롯해 우체국과 한진·롯데·로젠택배 등 택배기사 2000여명이 모여 광장은 물론 인근 도로와 인도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현행 코로나19 방역지침상 집회 참여 인원은 299명으로 제한되지만,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의 선거유세로 신고하는 ‘꼼수’를 보이며 법망을 피해갔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마지막 대화의 기회를 다시 한번 주기 위해 노조는 대승적으로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며 “오늘부로 CJ대한통운 본사 3층 점거 농성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다만 진 위원장은 “농성 해제가 CJ대한통운 측에 잘못된 판단의 근거로 작용한다면 점거 농성보다 큰 농성을 할 것”이라며 본사 1층 로비 점거 농성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택배노조는 지난 10일 조합원 200여명이 본사 1층과 3층을 기습적으로 점거했다. 이에 사측은 공동건조물침입, 재물손괴 혐의 등으로 남대문경찰서에 고소했고, 경찰은 택배노조 25명을 특정해 수사하고 있다.

노조 측은 시민사회 및 종교단체가 국무총리와 국토부 장관 면담 요구하면서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일정한 양보를 부탁해왔다고 이날 점거 농성 일부 해제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파업 장기화에 따른 배송지연 등에 여론이 냉담해졌고, ‘기약’ 없는 농성으로 인한 내부 반발이 커진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택배업계 한 관계자는 “점거에 들어갔던 노조원 110여명이 사태 장기화에 피로를 느끼면서 지금은 80여명 정도로 줄어든 걸로 안다”며 “노조를 탈퇴하고 현장에 복귀하는 기사들도 있다”고 전했다.

김슬기 전국 비노조 택배기사연합 대표가 21일 오전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조합원들이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연대파업에 대한 비노조택배연합 기자회견’을 열고 점거와 파업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비노조택배연합 “파업 명분 없어…일터로 돌아가야” 노노갈등

택배노조의 연대파업에 노노갈등도 심화하는 모습이다. 김슬기 비노조택배연합 대표는 이날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래처를 잃은 동료기사에게, 택배를 받지 못한 국민께, 어마어마한 손해를 보고 있는 CJ대한통운에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김 대표는 “쿠팡 같은 유통회사 등이 택배 시장을 예의주시하며 사업 확장을 노리는 이 시국에 연대 파업을 진행하는 것은 모든 택배기사의 밥그릇을 깨부수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노조택배연합은 파업 장기화로 일반 집화기사들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품 발송을 원활히 할 수 없어 거래처를 지키려는 비노조 기사들이 파업지역 발송 건을 다른 택배사나 퀵을 통해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거래처 한 곳의 한 달 수수료보다 타 택배사로 이동시키는 요금이 더 많이 나오는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난다고 성토했다.

택배노조의 일부 점거 농성 해제에도 사측은 강경한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의 법적인 교섭대상은 대리점연합회이지 우리가 아니다. 대화 요구는 맞지 않다”며 “로비 점거로 임직원의 정상 근무가 불가능해 전체 불법점거 상태는 변함없다. 택배노조의 전면적인 즉각 퇴거를 요구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택배노조의 본사 1층 점거 유지 및 사측과의 대치는 지속할 전망이다. 경찰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사측의 고소장 접수에 현재 노조 측 25명을 특정해 수사 진행 중”이라면서도 “(노조의) 쟁의행위 적법성이나 (CJ대한통운의) 사용자성 인정 여부에 관해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수사 기관 입장에서 먼저 말씀드리기는 어렵다”고 말을 아꼈다. 행정소송에서 불법 쟁의행위로 규정되기 전까진 강제진압 등 공권력 투입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경찰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정부와 시민사회, 전문가 등이 나서서 (쟁점인) 분류노동, 택배비 인상분의 분배 문제 등에 관해 사회적 합의안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가 CJ대한통운 본사에서 12일째 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21일 오전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택배노조 조합원들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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