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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서 못 받은 2300억…전쟁통에 결국 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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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오 기자I 2026.08.25 15: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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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 수교 후 14.7만달러 차관 제공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승계
무기 제공해 채권상환하는 '불곰 사업' 시작
러우 전쟁 이후 3차 불곰사업 교착

[세종=이데일리 송주오 기자] 우리 육군이 도입해 운용해온 T-80U 전차와 BMP-3 장갑차, 공군의 Ka-32 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돈을 주고 산 무기가 아니라, 러시아가 빚 대신 건넨 물건이라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내놓은 2025회계연도 결산 분석은 그 빚의 마지막 장면을 담고 있다. 34년을 끌어온 채권은 결국 만기를 넘겼고, 장부에는 0원으로 남았다.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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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1990년 9월 한소 수교였다. 냉전 해체기의 외교적 성취에는 대가가 따랐다. 이듬해부터 1992년까지 한국은 구소련에 14억 7000만달러를 빌려줬다. 은행단 현금차관 10억달러와 수출입은행 소비재차관 4억 7000만달러. 정부는 이 중 은행단 차관의 원리금 90%를 국회 동의를 얻어 지급보증했다.

문제는 소련 체제가 곧 붕괴되면서 발생했다. 채무는 러시아연방이 승계했지만 갚을 형편이 못 됐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무기였다. 1995년 7월 양국 정부 간 협정으로 시작된 것이 이른바 불곰사업이다. 현금 대신 러시아제 무기를 받아 채권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T-80U 전차와 메티스-M 대전차미사일이 이때 들어왔다. 1997년 11월에는 모스크바에서 군사기술·방산·군수협력 협정까지 체결하며 이 방식이 공식화됐다.

하지만 이듬해 8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 1차 불곰사업은 멈췄다. 그때까지 회수한 금액은 2억 1000만달러 남짓. 빌려준 돈의 7분의 1 수준이었다.

2003년 6월 기준 미상환 원리금은 22억 4000만달러로 불어 있었다. 20여 차례의 장관급·실무급 회담 끝에 그해 6월 20일 서울에서 최종 합의가 이뤄졌다. 연체이자 6억 6000만달러를 면제하고, 남은 15억 8000만달러를 2025년까지 22년에 걸쳐 나눠 받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그사이 만기가 도래한 은행단 차관이었다. 2004년 3월 정부는 국채 16억 6000만달러를 발행해 산업은행 등 9개 채권은행단에 대신 갚았다. 그리고 은행들이 갖고 있던 대러 채권을 넘겨받았다. 지금 정부가 러시아에 청구하고 있는 돈이 바로 이 구상금이다. 이미 국채로 메운 돈, 즉 국민이 낸 세금으로 먼저 치른 뒤 34년째 회수를 기다리는 돈이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2차 불곰사업으로 Ka-32 탐색구조헬기 등 2억 5000만달러어치를 다시 무기로 받았고, 2007년부터는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현금이 들어왔다. 회수는 정상 궤도에 오른 듯 보였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면서 3차 불곰사업 협상은 교착됐다. 무기로 갚는 길이 먼저 막혔다. 그래도 현금 상환은 이어졌다. 결정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러시아 주요 은행이 국제결제망(SWIFT)에서 배제됐고,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뒤 루블화로 갚겠다고 통보했다. 우리 정부는 공여 통화인 달러 상환 원칙을 고수했다. 양측은 지금까지 결제 방식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2023년 6월 상환분부터 회수는 완전히 끊겼다. 지금까지 못 받은 것이 6회분, 원금 1억 7800만달러(약 2289억원)와 이자 1880만달러다. 2003년 약정상 마지막 상환일이던 지난해 12월도 그냥 지나갔다.

2025회계연도 재무제표에서 이 채권은 구상채권액 2553억원에 대손충당금 2535억원과 현재가치할인차금 18억원을 설정해 장부금액 0원으로 처리됐다. 회계상 받을 가능성을 사실상 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 재정경제부는 2026년 본예산에 구상금을 아예 계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없애지도 못한다. 예산정책처는 결손처분이 회수 의지 포기로 비칠 수 있어 외교적·재정적 부담이 크다고 봤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내준 대러 차관 상환 특별허가는 2027년 6월 15일까지 유효하지만 추가 갱신은 불투명하다.

예산정책처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청구서를 보내고, 시효 중단 조치와 재협상 노력을 결산서에 별도 자료로 붙여 국회가 들여다볼 수 있게 하도록 조언했다.

수교의 대가로 건넨 14억 7000만달러는 전차와 장갑차, 헬기로 일부 돌아왔다. 그 장비들이 한국 방산의 기술 축적에 남긴 흔적은 적지 않다. 다만 나머지 2289억원은 결제 경로도, 통화도, 협상 채널도 모두 막힌 채 34년째 청구서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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