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대한독립의 의지를 담은 태극기가 원형 그대로 사찰 불화에서 발견됐다. 전북 남원 선원사 명부전 내부에 봉안됐던 ‘지장시왕도’가 그 주인공이다.
2009년 일제강점기 태극기가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는 최초로 진관사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림인 불화에서 태극기가 발견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역사문화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태극기 전문가인 송명호 전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전문위원은 “일제는 1911년에 칙령 19호를 공포해 태극기를 말살하고 대신 일장기를 걸도록 했다”며 “불화 속의 태극기는 독립을 바라는 불교계의 서원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한민국 땅에 태극기를 걸 수도 없는 상황에서 태극기를 그렸다는 것은 투철한 항일 독립정신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항일지장시왕도’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근대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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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위원은 “1910년대 이후 사용된 독립운동 시기 태극기 문양과 시왕도의 태극기 문양이 같다”며 “태극기가 오늘날 형태로 정착되기 전 단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태극의 문양은 일반적으로 적색과 파란색을 써야 하는데 옅은 녹색인 ‘뇌녹색’을 쓴 게 독특하다”며 “눈에 쉽게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뇌녹색을 쓰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했다.
10대왕 가운데 변성대왕을 선택한 것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낸 게 아니겠냐고 추측했다. 변성대왕은 칼산으로 된 ‘도산지옥’ 등을 관장하며 죄를 지은 자들을 심판하는 대왕이다. 송 위원은 “변성대왕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것은 ‘칼로써 대한제국을 망하게 한 일본도 결국 칼로써 망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지장시왕도’ 하단의 화기에 따르면 태극기가 제작된 시기는 1917년 11월 5일에서 17일이다. 특히 독립운동가이자 당대 최고의 스님이었던 진응스님의 증명으로 그렸다는 것을 화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 위원은 “진응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벌인 사실이 독립운동사 자료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며 “진응 스님과 만해 한용운 선생, 주지 기산 스님 등의 독립운동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연구를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원사 주지 운문(雲門) 스님은 최근 명부전에서 기도하던 중 명부전에 걸린 지장시왕도 괘불탱화에서 원형 형태의 태극기 그림을 발견했다. 운문 스님은 “지난해 11월 아침에 명부전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지장시왕도에서 신비로운 기운을 느꼈다”며 “시왕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변성대왕 관모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이 자행되던 시기에 그려졌다고 생각하니 보통의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는 “태극기의 의미를 바르게 살펴보고, 스님들의 대한독립 의지와 투철한 애국심을 널리 기리고 싶다”고 전했다.
선원사는 송 위원의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문화재 당국에 태극기 발견을 신고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국가등록을 추진키로 했다. 송 위원은 “앞으로 또 다른 불화에서 태극기 그림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 의미에서 국가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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