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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호 회장 "40년 출판업 통해 인생 공부…나무 심듯 길게 보고 가야"

이윤정 기자I 2019.04.17 17:28:51

나남출판사 창립 40주년
자서전 '숲에 산다' 펴내
'토지' 밀리언셀러…언론학계 베스트셀러 출간
"지성의 숲 만들고자 시작한 일…좋은 인연 많이 만나"

조상호 나남출판사 회장이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에서 열린 나남출판 창립 40주년·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인삿말을 하고 있다(사진=나남출판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박정희 군사문화의 악령에 희생되었던 반짝이던 대학생이었던 나는 이제 칠순을 앞둔 은발의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선다. 홀가분하지도 후회스럽지도 않다. 언론출판의 모서리였으면 어떠랴. 40년 가까이 정직한 3천5백 권의 책과 그만큼의 좋은 사람들이 지성의 열풍 지대에서 어깨 걸고 함께 춤추는데.”(‘숲에 산다’ 中)

대학 시절 기자를 꿈꿨으나 학생운동 경력 때문에 경로를 바꿔 언론출판의 길로 들어선 지 꼭 40년이 됐다. 어느덧 고희를 맞이한 조상호(69) 나남출판 회장은 지금도 나남이 펴내는 책의 초고를 직접 읽어보고 손을 본다. 이렇게 조 회장의 손을 거쳐 탄생한 책은 지금까지 3500여 권에 이른다. 2008년에는 아예 경기도 포천시에 나남수목원을 조성해 직접 나무를 심고 가꿔왔다. 그간의 출판사 일과 나남수목원에서 나무를 가꾸며 지내온 질풍노도의 여정을 오는 5월 5일 출간 예정인 자서전 ‘숲에 산다’에 담았다.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훈클럽신영연구기금에서 열린 나남출판 창립 40주년·출간기념 간담회에서 조 회장은 “나는 삽 한자루를 들고 출판이라는 황무지에 뛰어든 벌거숭이였다”며 “‘지성의 숲’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평생의 업이 됐다”고 말했다.

△박경리 ‘토지’로 독서 열풍

1979년 창립한 나남출판사는 첫 책으로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번역·출간했고, 1983년에는 이청준의 ‘황홀한 실종’으로 나남문학선 발간을 시작했다. 특히 박경리 선생의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1993), 대하소설 ‘토지’(2002)를 발간한 이후 대한민국에 독서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1994년에 완간된 ‘토지’는 소위 팔자가 센 소설이었다. 나남출판사가 아니라 토지출판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전에 박 선생이 출간했던 ‘김약국의 딸들’이 30만권 정도 나가면서 화제가 됐는데, 여기서 번 수익을 모두 ‘토지’ 계약금으로 드리겠다고 했다.”

당시 60만권을 팔아야 손익분기점에 다다를 정도의 계약금을 미리 주며 ‘매절계약( 선인세를 받고 모든 저작권을 출판사에 넘기는 계약 )’을 맺었다. 그렇게해서 2002년 새롭게 선보인 21권의 ‘토지’ 완간본은 200만부가 팔렸다.

조 회장은 “‘토지’가 밀리언셀러로 히트를 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읽고, 출판사에도 큰 도움을 줬으니 결론적으로 착한 자본이었다”며 “아무리 절벽에 있어도 좋은 꽃에는 나비와 벌이 찾아가듯이 나남문학선으로 피운 문학의 향기가 이런 좋은 기회로 찾아와준게 아닌가 싶다”고 회상했다.

△국내 대표 언론출판사로 우뚝

언론학을 전공한 학생들에게 나남출판사는 특히 익숙하다. 홍기선 교수의 ‘커뮤니케이션론’ 발간을 계기로 커뮤니케이션 분야의 책을 본격적으로 출판하며 언론출판을 대표하는 출판사로 우뚝섰다. 1990년 발간한 ‘매스미디어와 사회’는 언론학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조 회장은 “언론 분야에서 5만 부가 넘게 팔렸으면 굉장히 잘 나가는 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매스미디어와 사회’였다”며 “권태준 교수의 ‘한국의 세기 뛰어넘기’도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라는 사훈처럼 조급해하지 않은 덕에 IMF와 같은 굴곡의 세월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1년에 500권씩 팔리는 책이 1000종이면 1년에 50만권 팔리는 것”이라며 “예전처럼 밀리언셀러가 나오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출판업을 하면서 만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는 조회장은 “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하던지 ‘롱텀’으로 길게 보고 가야 한다”는 조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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