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이 돌아왔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지 813일 만이다.
전남 강진에서 2년여간의 생각을 정리한 저서 ‘나의 목민심서 강진일기’를 들고 ‘개헌’과 ‘탈당’ 등 묵직한 주제를 던졌다.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더민주 의원 등이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야권의 대선 판세도 크게 요동칠 전망이다.
손 전 고문은 20일 오후 4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계 복귀를 공식 선언했다. 손 전 고문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정론관은 이른 시간부터 취재진과 지지자들이 뒤얽혀 북새통을 이뤘다. 양승조, 임종성, 최명길, 이찬열, 이종걸, 김병욱, 고용진 의원 등도 손 전 고문을 응원하기 위해 정론관을 찾았다.
손 전 고문의 이날 메시지는 개헌에 집중됐다. 그는 다산 정약용의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87년 헌법체제가 만든 6공화국은 그 명운을 다했다”고 단언했다.
그간 여러차례 ‘새 판 짜기’라는 프레임을 던져온 손 전 고문으로서는 ‘7공화국 체제’를 언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정계 복귀 선언까지 아우른 셈이다. 그는 “6공화국 체제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더 이상 나라를 끌고 갈 수가 없다”며 “명운이 다한 6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이 저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로 개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유력한 대선 후보로서 손 전 고문이 개헌 이슈를 앞세우면서 야권의 대권 지형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야권 대선 후보 중 가장 앞서나가는 문 전 대표는 개헌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개헌을 시대적 과제로 여기는 야권의 원로나 중진급 인사들의 반향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손 전 고문은 또 정계 복귀와 동시에 탈당을 하면서 역시 문 전 대표를 비롯한 더민주 인사들과 각을 세웠다. 그는 “국회의원, 장관, 도지사, 당 대표를 하면서 얻은 모든 기득권을 버리겠다. 당적도 버리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계파의 연쇄 탈당도 이어질 전망이다. 기자회견 뒤 이찬열 의원은 “내가 여기 남아서 뭐하겠나. 대표님 있는 곳으로 가야지”라며 탈당 의지를 보였다.
다만 원고에 적힌 ‘당적’을 실제로는 ‘당직’으로 발언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더민주 관계자는 “굳이 ‘탈당’이라는 말을 본인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손 전 고문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당적을 바꾼 바 있다.
정계 복귀를 선언했지만 대권 도전 여부에 대해서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손 전 고문은 “손학규 대통령”을 외치는 지지자를 향해 찡그린 표정을 지으며 만류의 뜻을 드러냈다. 취재진이 손 전 고문을 따라나서며 모두 24가지의 질문을 던졌지만 어떠한 질문에도 답하지 않고 “앞으로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자리를 떠났다.
손 전 고문의 복귀에 대한 야권의 반응은 엇갈렸다. 문 전 대표는 손 전 고문의 정계 복귀 선언 질문 자체를 막으며 “언론이 이 말을 그대로 다뤄주지 않는다”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반면 국민의당 인사들은 환영의 뜻을 드러냈다. 안 전 대표는 “정계복귀를 환영한다. 힘을 합해야 한다”고 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쌍수 들어 환영한다. 국민의당에 와서 꿈을 펼쳤으면 좋겠다”고 노골적인 입당 권유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