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서경배 회장 "예상 뒤엎고 성공한 제품은 '쿠션'"

최은영 기자I 2015.09.09 22:25:27

3대가 이어온 미(美)의 여정..스토리가 모여 완성된 70년 히스토리
실적 부진 ‘에뛰드', 까치집 다시 짓는 마음으로 재정비
이상적인 경영권 승계? "경영자 그룹 만드는 것이 중요"

[이데일리 최은영 기자]“우리의 이야기를 써가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흘러 스토리(이야기)가 모이면 히스토리(역사)가 된다. 우리만의 문화로 세상을 기쁘게 하는 이야기를 써내려가겠다.”

해외시장 공략에 외국 브랜드를 인수해 활용할 계획은 없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서경배 아모레퍼시픽(090430)그룹 회장의 말이다.

9일 경기 오산시 가장동 아모레퍼시픽 뷰티 사업장에서 열린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
‘K뷰티 선도기업’ 아모레퍼시픽이 창립 7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9일 경기 오산 가장동 아모레퍼시픽 뷰티사업장에서 기자들과 만난 서 회장은 지금껏 아모레퍼시픽이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등 궁금했던 이야기를 한보따리 풀어냈다.

개성의 부엌 한켠에서 동백기름을 짜서 내다 팔던 할머니에 그런 어머니를 곁에서 돕다가 화장품 회사를 차린 아버지. 서 회장은 할머니, 아버지의 뜻을 이어 받아 회사를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아모레퍼시픽에는 ‘5대 글로벌 브랜드(설화수·라네즈·마몽드·에뛰드·이니스프리)’, ‘4대 원료(동백·인삼·녹차·콩)’, ‘5대 가치(개방·혁신·친밀·정직·도전)’ 등이 있다. 브랜드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심지어는 회사 건물 화장실 마다에도 ‘웃음이 꽃 피는 곳’ 등으로 의미를 부여했을 정도다.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의 모든 것은 자연,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2020년까지 목표는 해외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연매출 12조원 규모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6년 중동, 2017년 중남미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고, 인구 1000만 명이상의 ‘글로벌 메가 시티’를 집중적으로 공략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서 회장과의 일문일답.

- 중남미와 중동 진출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중동은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 얼핏 보기엔 하나로 보이지만 두바이와 사우디, 터키, 이란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최근 중산층이 늘고 화장에 대한 생각도 변하고 있다.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등 중남미도 마찬가지다. 우리 화장품에 관심도 많다.

- ‘글로벌 메가시티 전략’은 어떠한 배경에서 나왔나.

△ 10년 전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도시는 20개 내외였다. 현재는 30개로 늘었고, 조만간 40개가 될 것이다. 도시화가 진행되고 교통·통신 등이 발달하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도시는 개방적이다. 모든 것이 모여 있다. 새로운 유행과 혁신이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아모레 같은 소비재 기업은 메가시티를 공략하는 게 효과적이다.

-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할머니는 자신이 만드는 물건에 대한 고집이 상당했다. 최고로 좋은 원료만을 골라 썼는데,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타협을 몰랐다.

또 하나 남겨준 유산은 나눔이다. 할머니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았는데도 밥을 할 때면 꼭 한 사람 분량을 더 지었다. 혹시 올지 모를 손님을 위해서다. 그건 아는 사람들이 저녁을 못 먹은 날이면 쓱 우리 집에 들르곤 했다고 한다. 그런 넉넉한 마음, 남과 더불어 사는 생활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아버지는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북사투리로 거짓부렁하지 말라던 가르침도 가슴에 남아있다.

- 무려 70년간 최초, 최고의 행보를 이어왔다. 가장 기뻤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1991년 파업이 있었는데 사실은 거의 망할 뻔했다. 그 당시는 시장이 개방되고 민주화의 움직임이 있었을 때다. 그런 변화에 대응이 미숙해 어려움을 겪었다. 당면한 어려움을 우리 내부의 문제로 돌리고 개선해나가자 상황은 좋아졌다. 1990년대 말에도 (구조조정 등) 어려움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어려움을 극복했을 때 선대회장께서 기뻐하시던 모습이 가장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 아모레퍼시픽에는 히트 상품이 많다. 예상외로 성공을 거둔 제품이 있다면.

△ 사실은 ‘쿠션’이다. 쿠션은 연구원들끼리 밥을 먹다가 도장 찍듯이 간편하게 화장을 할 순 없을까 얘기하다가 시작됐다. 기존에 없던 제품이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청계천과 세운상가를 누볐다. 제품은 만들어졌는데 마케팅 책임자들이 개발비 등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서로 안 맡겠다고 하기도 했다. 점주들도 안 팔겠다고 하더라. 한 직원이 홈쇼핑에서 제품 설명을 곁들여 팔아보겠다고 한 것이 대박이 났다.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성공했다.

- 쿠션에 이은 비장의 무기는 무엇인가.

△ 여러가지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재미있게 쓸 수 있을만한 제품을 구상 중이다. 슬리핑 마스크팩, 윤조 에센스, 에어쿠션 등이 그러했듯이 사람들의 피부 고민을 해결할 상품을 구상하고 있다. 환경의 변화를 면밀히 살펴 보면서 새로운 상품을 준비하겠다.

- 5대 챔피언 브랜드 가운데 에뛰드는 실적이 예전만 못하다. 이대로 2020 목표 달성 가능한가.

△ 회사 전체적으로 다른 상품이 잘 될 때 브랜드를 정비해야한다는 생각에서 현재 브랜드를 재정립하고 있다. ‘프린세스의 꿈’이라는 브랜드의 모토가 고객 생각과 잘 안 맞는 것이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 상품 구성도 달리할 거다.

까치는 바람이 가장 세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그래서 태풍이 불어와도 까치집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 집을 정비하면 바람이 세게 부는 날 까치집의 어린 새끼들은 다칠 수 있다. 다시 까치집을 짓는 마음으로 재정비하겠다.

- 평소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하나. 제품 시연은 어디까지 해봤나.

△ 클렌징을 열심히 한다. 화장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클렌징이기 때문이다. 노화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영향이 큰 게 햇빛에 의한 광노화다. 그래서 선크림을 여기저기 두고 쓴다.

우리 제품은 다 써본다. 기분에 따라 향수를 뿌리기도 하고. 20년 전에는 매니큐어를 많이 바르고 다녔다. 직접 시연하기 어려운 제품이 마스카라다. 써본 적은 있는데 아직도 어렵다.

- 사람을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곳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이 나 역시 피부다. 대만에 가면 피부에 땀구멍이 많구나, 중국 사람들은 피부가 거칠어 안티에이징 시장이 엄청 크겠다. 프랑스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에는 사람들 머릿결이 좋지 않다 했다.

- 최근 아모레퍼시픽 주가가 급등하면서 세계적인 부호가 됐다. 감회가 어떤가.

△ 주가가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분들이 회사를 좋게 바라봐줬다는 뜻이다.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사회에 조금 더 쓸모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깊게 고민하고 있다.

- 최근 롯데그룹이 형제간 경영권 문제로 진통을 앓았다. 경영권 승계는 최고 경영자의 마지막 임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앞으로 후계 구도는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 아직 50대 초반이고 갈 길이 멀다. 이것저것 내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의 기업은 경영자들의 그룹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회사는 업종이 단순해 우려하는 여러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현재로서는 좋은 경영자를 두텁게, 성을 초월해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좋은 경영자를 키우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 용산에 들어설 신사옥 건립 상황은 어떠한가.

△ 2017년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 선대회장께서 그곳으로 처음 이사를 간 때가 1956년, 첫 번째 사옥을 지은 게 1958년, 다시 그 땅에 사옥을 지은 게 1976년. 이번에 짓게 되면 지난 60년에 걸쳐 세 번째 사옥을 지어 올리는 셈이다.

삼수를 하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창의공방을 만들려고 한다. 사람들 사이 소통이 원활하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건물의 가운데를 다 비워서 하루 종일 전 건물에 햇빛이 들어오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70년 역사를 이어온 윤독정 여사와 창업주인 고 서성환 선대회장, 서경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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