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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일본 경제가 최근 부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일본 증시의 벤치마크 지수인 닛케이평균지수는 지난 24일 3만3625.53에 마감하며 버블 경제가 정점이었던 1990년 3월 이후 33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저에 힘입어 일본 증시 상장사의 4~9월 순익도 지난해보다 10% 증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 경제 성장률을 2.0%로 전망하며 1998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1.4%)을 앞설 것으로 관측했다.
일본 경제 전문가인 이지평 한국외대 특임교수는 최근 이데일리와 한 인터뷰에서 “일본 경제가 디플레이션과 장기 불황에서 벗어났다”고 진단했다. 그는 리쇼어링(해외 이전 기업의 국내 복귀)을 포함한 일본 정부의 투자 장려 정책, 디지털화·그린화(친환경화) 등 경제 체질 개선 정책이 일본 경제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리쇼어링과 공급망 재편 등은 한국 정부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경제의 30년 장기불황이 이젠 끝났다고 봐도 되나.
△엄밀하게 말해 이제는 장기불황이라고 할 수 없다. 성장세가 확 높아진다고 판단하긴 이르지만 (30년간 이어진) 디플레이션은 기시다 정권 들어 끝날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니 1~2%대 성장률을 보일 것이다. 보통 선진국들은 고도 성장을 하긴 어렵다. 다만 올해 설비투자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100조엔이 넘는다. 1991년 이후 처음이다. 내년에도 100조엔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쇼어링 등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본 정부 정책 등의 영향이다.
-3분기 성장률이 다시 마이너스(-2.1%·전기 대비 연율 기준)로 떨어졌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올해 1분기(3.7%)와 2분기(4.5%) 성장률이 높게 나와 숨을 고르는 측면이 크다. 올해 1~3분기의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1.63%다. 4분기까지 포함해 올해 1.5~2% 성장할 것이다. 4분기가 안 좋다고 해도 한국보다 연간 성장률은 높을 것으로 본다. 1% 안팎인 일본 잠재성장률을 생각하면 상당히 선방한 것이다. 올해보다는 못하지만 내년에도 1%대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게 된다.
-기시다 내각의 경제정책 특징은 무엇인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라고 한다. 중산층 구매력을 높여 소비가 늘어나면 기업 투자가 확대될 것이란 생각이다. 또한 새로운 자본주의에선 분배만큼이나 성장도 중시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는 금융 완화와 확대 재정을 했는데 구조적인 성장률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 기시다 내각은 디지털 이노베이션·그린 이노베이션 통해 생산성·성장률을 높이고 그에 따라 임금을 끌어올리는 구조를 노리고 있다.
-그런데 현재 실질임금은 계속 마이너스다.
△선순환을 위해선 물가가 2%대로 떨어져야 하는데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런 부분이 일본 경제를 둔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조적으로 2%대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고 내년 춘투(춘계 임금 협상) 임금 인상률이 3%대로 오르면 임금이 플러스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이 임금을 올릴 여력이 있나.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한 상태다. 임금을 올리면 이미지 개선으로 고용을 많이 할 수 있다. 엔저로 기업 수익 역시 좋아졌다. 상장사의 약 20%가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냈다. 20년 동안 임금을 거의 동결했으니까 지금 조금 올릴 여력이 있다. ‘인도보다 일본 인건비가 싸다’는 기업도 있다. 인도는 임금을 10~20%씩 올리는데 일본은 많이 올려도 3%다. 일본 정부도 직업 교육 강화하고 직원 리스킬링(직무 전환을 위해 새 기술을 배우는 것)에 감세 혜택을 주는 등 임금을 올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일본 기업이 살아나면 한국 수출에 피해는 없나.
△현재 엔저라고 해도 한국 수출에 큰 영향은 못 주고 있다. 스마트폰, 가전 등에선 일본과 경합 관계도 많이 줄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은 리쇼어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개별 기업이 아닌) 산업 전체를 리쇼어링하기 위해 일본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일본에 투자를 하면 혜택을 주고 있다. 리쇼어링을 통해 생산 능력이 확충되면 일본 수출은 늘고 한국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최근엔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제3공장을 지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내에도) 도시바와 마이크론 히로시마 공장(옛 엘피다 메모리 공장)등이 있다. 이렇게 (국내외 기업 공장이 늘게)되면 일본 반도체 산업이 부활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일본이 수소나 에너지저장장치(ESS), 차세대 배터리 등에서도 기를 쓰고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토요타는 2024회계연도에 4조5000억엔(약 40조원)이라는 기록적인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돈을 차세대 전기차에 붓겠다고 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일본 기업이 늦더라도 (선발주자보다) 잘하는 경우가 있다
-리쇼어링은 한국도 계속 시도했다. 일본의 성공 요인은.
△우선 엔저로 비용이 하락했다. 또 임금이 안정적이고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준다. 여기에 노사 관계까지 안정적이다. 마지막으로 괜찮은 지방 공대를 중심으로 클러스터가 형성돼 있다. 장기 불황 때 일본 기업이 수출은 잘 안 됐지만 해외로 많이 나가서 생산거점을 확대했다. 해외 생산액이 수출의 서너 배 된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이슈가 생긴 게 디지털화와 그린 인프라 구축이다. 어차피 이런 흐름에 맞춰 공장을 바꿔야 하고 원천 기술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50~60년 된 일본 국내 공장을 기업들이 교체하고 있다. 지금이 투자의 적기가 됐다.
-한국이 참고할 만한 정책이 있나.
△한국은 임금이나 노사관계, 생산성 향상 등에서 비즈니스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 새로운 시대에 맞게 공장을 디지털화, 그린화해야 한다. 일본에선 기시다 총리가 이런 어젠다를 말하는데 대해 경제계가 호응하고 있다. 기술 투자에 얼마가 필요하다고 하면 정부와 기업이 얼마씩 투자할지 컨센서스가 있다. 이렇게 비전을 갖고 꾸준히 투자하면 기술을 축적할 수 있다. 그린화를 못하면 국내 생산 철강이나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막힐 수 있다. 원자력이냐 재생에너지냐, 이걸로 싸울 때가 아니다.
-미·중 갈등으로 공급망 개편이 빨라지고 있다. 일본 대응은.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며 동맹국 중심 공급망 재편 전략을 펴고 있는데, 일본은 반도체 생산기지 부활 전략으로 호응하고 있다. 또 경제안전보장추진법을 제정하고 지금도 계속 시행령을 정비하고 있다. 주요 물자 공급망 확보, 핵심 기술 유출 방지, 인프라에 대한 사이버 공격 방어, 군사기술에 대한 비밀 특허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한국은 일본보다 범위는 작지만 공급망기본법안을 발의했는데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고 있다. 이런 중요한 법안은 국회에서 초당적으로 처리해줘야 한다. 그동안 한·일 관계가 나쁘다 보니까 중국 의존도가 높아졌는데, 이제는 아니다. 지금 시점에선 한일간 공급망 안정에 따라 희토류, 리튬 등에서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
◇이지평 교수는…
△1963년 일본 도쿄 출생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과 △고려대 경제학 석사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수석연구위원·미래연구팀장·에너지그룹장 △한국외대 융합일본지역학부 특임교수 △저서 ‘우리는 일본을 닮아가는가’(공저) ‘볼륨 존 전략’ ‘일본식 파워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