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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처음으로 국회에 제출된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나 ‘아빠찬스’와 같은 각종 비리 의혹이 터질 때마다 법 시행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외면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10가지 행위기준, 처벌 규정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은 18일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 부패행위에 대한 실효적인 관리장치이자 예방조치”라면서 “국민 여러분 한 분 한 분께서 우리 공직사회가 청렴하고 투명한, 이해충돌 없는 공직사회가 되도록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사적이해관계와 공정한 직무수행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준수해야 할 10가지의 행위기준과 각 기준 위반 시 형사처벌, 과태료 등 처벌규정을 담고 있다.
법은 크게 신고·제출 의무 5가지와 제한·금지 업무 5가지로 나뉜다.
공직자는 본인의 직무관련자가 사적이해관계자이라는 것을 알 경우, 그 사실을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하고 직무회피를 신청해야 한다. 부동산 직접 취급기관과 개발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의 소속 공직자는 본인이나 배우자, 직계존속·비속이 기관에서 수행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 지구 내 부동산을 보유·매수한 경우 소속기관장에게 이 사실을 신고해야 한다. 또 고위공직자의 경우 임용일 기준으로 최근 3년간의 민간 부문 업무활동 내역을 제출해야 하고 소속기관장은 이를 공개할 수 있다. 공직자와 배우자, 직계존·비속, 특수관관계업자는 공직자의 직무관련자와 금전, 부동산 등 사적거래 시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공직자는 직무관련자인 소속 기관의 퇴직자와 골프, 여행, 사행성 오락을 하는 경우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아울러 직무관련자에게 사적으로 노무·조언·자문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등 공직자 직무 수행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각종 외부활동은 제한된다. 또 공공기관(산하기관, 자회사 포함)은 경쟁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소속 고위공직자 등의 가족을 채용할 수 없으며 수의계약도 체결할 수 없다. 공공기관이 소유·임차한 물품·차량·시설 등을 사적으로 사용·수익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사용·수익하게 하는 행위도 일체 금지된다. 또 공직자가 직무수행 중 알게 된 비밀 또는 소속기관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몰라서 신고 안했다 용납 안돼”…하반기 전수조사
전 위원장은 이해충돌방지법이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투철한 신고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반 국민 신고로 공공기관 수입이나 이익이 발생하면 최대 30억원까지 보상금이 지급되고, 신고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치료를 받거나 불이익 조치로 정직, 파견근무를 하게 돼 임금 손실이 발생한 경우에는 구조금을 지급한다.
신고 역시 온라인 신고창구인 청렴포탈을 이용해 간편하게 할 수 있으며 110 국민콜, 1398 부패신고상담 전화를 통해 24시간 무료 신고 상담 서비스도 제공한다.
공직자는 공무수행 과정에서 이해충돌 상황이 발생했을 때 청렴포털 내 ‘이해충돌방지법 표준신고시스템’에 접속해 본인 확인 후,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른 사적이해관계자 신고 등 신고·제출 의무를 이행하면 된다.
전 위원장은 “공직자의 신고 의무는 사전 신고”라며 “몰랐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거나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일처리는 공정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신고를 하지 않은 행위 자체는 위법이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신고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해충돌상황이 발생하거나 불공정행위가 발생하면 역시 처벌을 받는다.
권익위는 고위공직자들의 이해충돌방지법 의무이행 실태를 확인하기 위한 전수조사를 올 하반기 실시하기로 했다. 내달 선출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은 물론 새 정부에서 임용된 국무위원들도 조사대상에 포함된다.
사실 이해충돌방지법에 규정된 신고·제출 의무는 현행 공직자 행동강령에도 규정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그간 이같은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전 위원장은 “이해충돌방지법 시행 전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약 1만명에 가까운 공직자들의 위반사례를 적발했다”며 “처벌이 징계권자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대부분 공직자들이 이같은 의무에 대해 인식을 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제 법이 제정되면서 적발될 경우, 적어도 과태료 처분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