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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너무 고달프지"…설 특수 사라진 시장

경계영 기자I 2017.01.24 16:31:45
설 연휴를 이틀 앞둔 2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남대문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경계영 기자


[이데일리 경계영 김정남 기자] “어휴, 너무 고달프지.”

설 연휴를 사흘 앞둔 24일 이른 오후 서울 남대문시장. 이 시장에서 40년 넘게 미역 등 해산물을 팔아온 김사옥(76)씨는 기자가 ‘설 대목’ 얘기를 꺼내자 이내 손사래를 쳤다. “지금 한번 봐봐. 손님이 없잖아. 경기가 나빠도 보통 나쁜 게 아니야. 손님이 30%로 줄어든 것 같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게 김씨가 느끼는 ‘밑바닥 경기’다.

김씨는 또 “예전 같으면 설 대목 때 손님이 겹겹이 서있어서 물건을 사기도 힘들었다”며 “차례상에 올릴 때 중국산 대신에 국산 올리려고 많이들 (시장을) 찾았는데, 지금은 국산을 갖다놔도 사갈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과일 고기 생선 등 성수품을 파는 시장 골목길은 여느 명절 때보다 오가는 사람이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말이다. 가격만 묻고 자리를 뜨는 손님들도 적지 않아 보였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40대 정모씨는 “회사에서 직원들 선물용으로 사가는 물량도 반토막 났다”며 “매출이 60% 정도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인근 대형 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청과 판매를 담당하는 최모(42)씨는 “설 배송은 거의 끝났고, 이제 개별적으로 선물하려 사가는 고객이 많을 때인데 문의도 뜸하다”고 전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소비자들의 지갑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상인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찬바람 부는 소비심리

24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1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이번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지난달보다 0.8포인트 떨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이후인 지난해 11월부터 석달째 하락이다. 이는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지난 2009년 3월 75.0을 기록한 이후 7년10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동향지수 중 주요 지수 6개를 이용해 산출된다. 기준치 100을 기준으로 100보다 높으면 낙관적으로,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으로 소비자가 본다는 의미다.

현재경기판단CSI은 51로 4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2009년 3월 34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지금 경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악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갑은 얇아지는데 물가 관련 체감도는 나빠졌다. 체감물가를 가늠할 수 있는, 지난 1년 동안 물가에 대한 인식은 2.7%로 0.3%포인트 상승하며 2014년 11월(2.7%) 수준을 회복했다.

조류독감(AI) 이후 가격이 치솟은 계란을 포함해 배추 무 상추 등 신선식품으로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물가수준전망CSI는 7포인트 오른 148을 기록했다. 2012년 3월(14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갈아치웠다. 앞으로 1년간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기대인플레이션율도 2.8%로 2014년 9월(2.8%) 당시까지 높아졌다. 2.5% 수준에 머물다가 한달 새 0.3%포인트 급등했다.

◇경제 흔드는 소비급랭

소비심리 급랭의 의미는 작지 않다. 금융권 한 고위인사는 최근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라는 말을 부쩍 많이 한다. 그는 “경제 활동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인간 심리와 행동의 총합”이라면서 “괜찮게 굴러가고 있는 경제도 자꾸 ‘어렵다, 어렵다’고 하면 정말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률과 CCSI 상승률 추이를 함께 보면, 2008년 고꾸라졌다가 2009년 급반등한 이후 지리한 ‘L자형 불황’ 기류를 보이는 게 거의 똑같다. 주요 경제연구기관들도 민간소비를 올해 우리 경제의 최대 악재로 꼽고 있다.

25일 공개되는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서 민간소비 쪽이 특히 부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1분기부터는 그 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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