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예정됐던 수석비서관회의를 돌연 연기했다.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의혹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박 대통령이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 논란 등을 고리로 역공을 취하기 위해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정연국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는 연기됐다”며 “향후 날짜가 정해지면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통상 월요일에 격주로 열려왔던 대수비를 특별한 이유 없이, 그것도 회의 당일에 연기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대수비는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 직전인 20일께 열릴 것으로 전해졌다.
먼저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과 삼성전자·현대자동차 위기 등에 따른 안보·경제 복합위기에 대한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해 대수비를 연기했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실제 박 대통령은 이날 북한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보고를 비공개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어수선해진 청와대 안팎의 분위기를 고려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와 관련, 정 대변인은 “지난번에도 목요일(9월22일)에 대수비가 열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며 “(박 대통령은) 북핵과 경제현안 등 심각한 문제들의 해법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고 그 부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메시지 관리’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미 지난주 국무회의 등을 통해 복합위기에 대한 메시지는 발신할 때로 발신한 만큼 미르·K-스포츠 의혹 등에 대한 야권의 파상공세가 예상되는 21일 국회 운영위 국감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대수비를 주재,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 논란 등을 거론하며 야권에 역공을 편다는 시나리오다. 정 대변인이 이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인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북한의 의견을 물었다는 이른바 ‘송민순 회고록’ 논란에 대해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하고 심각한 충격적인 일”이라고 강한 어조로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북한을 ‘지옥’으로 빗대며 북한 군인·주민을 향해 ‘탈북 권유’ 메시지의 선명도를 높이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송민순 회고록’ 논란은 참여정부와 야권의 책임을 물으며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가장 큰 호재”라고 봤다.
대수비 연기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경질설과 맞물리면서 그 파장이 더 커졌다. 더민주는 “이석수 특감의 사표 수리로 국감을 피해 가더니 이제는 우 수석마저 잘라내고 화살을 피하겠다는 것인가”(기동민 원내대변인)라고 우 수석 경질을 기정사실화했고 정 대변인은 “전혀 사실이 아닌 정말 느닷없는 기사”라고 일축했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 상 ‘검찰 수사 후 우 수석 경질 여부 결정’이라는 발언을 거두진 않을 것”이라며 당장 경질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