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한층 올린 건설한류…말레이시아 스카이라인 확 바꾸다

박종오 기자I 2014.10.27 18:02:49

르포/마천루의 도시 쿠알라룸푸르 건설 현장을 가다

[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박종오 기자] 지난 23일 오전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지역 명물인 지상 88층 높이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쌍둥이 빌딩)를 등지고 1㎞쯤 떨어진 빈자이 지구에 들어섰다. 중심에 높이 200m가 넘는 초고층 건축물이 뼈대를 드러낸 채 서 있었다. 회색 철근 콘크리트 기둥(슬랜팅 컬럼) 7개가 건물 각 면을 지그재그로 감싸고 올라가는 틈새 사이로 파키스탄과 인도, 말레이시아 노동자 1000여명의 가뭇하게 그을린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끈적끈적한 공기 속에서 이들은 건물 전면에 통유리를 입히는 커튼월 설치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내 빈자이 지구에서 대우건설이 짓고 있는 초고층 건축물인 ‘IB타워’가 내년 4월 준공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다. 이 건물이 완공되면 쿠알라룸푸르의 스카이라인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사진=대우건설]
대우건설이 짓고 있는 ‘IB타워’ 공사 현장. 말레이시아에서 세번째로 높은 이 복합 건물은 이미 공정률 96%를 넘어섰다. 골조는 당초 설계된 지상 58층, 274m 높이에 다다랐다. 건물 안쪽에 있어야 할 주요 수직 기둥(메가 컬럼)을 바깥으로 고스란히 드러낸 독특한 구조다. 내부를 관통해 꼭대기 층인 58층에 올랐다. 쿠알라룸푸르 중심 업무·상업지구 사방이 이처럼 공사 중이었다. 바닥 공사 중이거나 가림막을 친 채 저층부 골조가 모습을 갖춰가는 대형 건설 현장이 주변 5㎞ 이내에 10곳이 넘었다.

현지의 후끈한 건설 열기는 고속 성장하는 경제를 짐작케 한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2010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연평균 5%가 넘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2년에는 1인당 GDP(국내총생산) 1만 달러를 돌파했다. 주택시장도 활황세다. 말레이시아 주택 가격지수를 보면 이 나라 집값은 2010년 이후 매년 6% 이상 상승했다. 2012년과 2013년(3분기까지)에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 건설업 성장률도 연 10%를 웃돌만큼 뚜렷하다. 개인 소득이 늘고 미국 등 선진국이 푼 막대한 자금과 중동 오일머니가 모여 시중의 유동성이 흘러넘친 결과다.

△쿠알라룸푸르 중심부에 랜드마크 건물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가 우뚝 서 있다. 국내 건설사는 트윈타워를 포함해 말레이시아 내 최고층 건축물 상위 1~4위의 시공 실적을 독차지하고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쿠알라룸푸르 내 마천루 상당수가 한국 건설 기술의 결실입니다.” 한승 대우건설 말레이시아 지사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의 1개동은 극동건설과 삼성건설 컨소시엄이 지었다. 대우건설은 IB타워(58층·274m)가 내년 4월 준공되면 과거 건설한 ‘텔레콤 말레이시아 타워’(77층·310m), ‘KLCC 타워’(58층·267m)와 더불어 말레이시아 내 초고층 상위 2~4위 건축물의 시공 실적을 싹쓸이하게 된다. 오피스와 호텔이 들어선 ‘유추안 타워’(63층·238m)와 내년 준공을 앞둔 ‘르 누벨 레지던스 호텔’(49층), ‘세인트레지스 호텔’(48층·212m) 등도 모두 국내 건설사의 작품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국내 건설사가 시공한 주요 초고층 건축물 현황. [자료=각 업체]
응축된 기술력이 수주를 이끈 원동력이다. 일례로 IB타워 건설 현장에서 대우건설은 ‘시공사의 무덤’과 맞닥뜨렸다. 영국의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의 설계가 까다롭고 난해했던 탓이다. 휴일이 많고 민원이 잦은 현장 사정도 결코 녹록지 않았다고 한다. 대우건설이 자체 개발한 ‘변위 제어 기법’과 ‘바닥 건너뛰기(skip flooring)’ 공법이 이때 빛을 봤다. 준공 후 건물이 10㎝ 이상 기울어질 수 있음을 설계자보다 먼저 간파해 위태로운 사고를 막았다. 지연된 공사 기간은 한국에서 비계(작업용 임시 시설물)를 공수해 2개 층의 공사를 함께 진행하는 모험을 통해 단축시켰다. 38~40층 공사를 건너뛰고 41층 바닥을 먼저 다진 이후 38층과 42층 이상을 동시에 시공한 것이다. 이기순 대우건설 현장소장은 “악조건 속에서도 새로운 공법과 잦은 철야 작업을 거쳐 약속한 공기대로 공사를 마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우건설의 말레이시아 지역 내 역대 수주 현황 [자료=대우건설]
코트라(무역투자진흥공사) 쿠알라룸푸르 무역관은 “올해 말레이시아 건설업이 연 8%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끼었다는 우려가 커져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지만 여전히 먹거리가 풍성할 것이라는 뜻이다.

현지 하늘과 건물의 경계선을 새로 그린 국내 건설사들은 다른 영역으로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쿠알라룸푸르-싱가포르 간 고속철도(HRS)’, ‘말레이시아 도시철도(MRT) 2호선 사업’, 현지 국민연금(PNB)이 발주할 예정인 100층 규모의 ‘와리산 메르데카 타워’,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나스가 추진하는 ‘라피드 석유화학단지 2단계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넘어야 할 과제도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현재까지 국내 업체의 아시아지역 수주금액은 약 117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약 213억 달러)보다 44.8% 줄었다. 말레이시아 수주액도 같은 기간 30.9% 감소한 16억1306만 달러에 그치고 있다. 대형 건설 공사의 발주가 줄고 중국 등 후발 주자와의 수주 경쟁도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김창식 대우건설 말레이시아 총괄 상무는 “대우건설은 1983년 현지 지사를 설립한 이후 다양한 공사를 수행하며 경험을 쌓아 왔다”며 “초고층 건축물뿐 아니라 인프라 시설 등 향후 발주하는 현지 공사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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