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백남기 농민 사망' 구은수 무죄…하급자 집유·벌금형(상보)

한광범 기자I 2018.06.05 16:24:13

"구은수 전 서울창장, 당시 상황 구체적으로 알기 어려워" 판단
현장 책임자와 살수요원 유죄 판단 불구 벌금·집행유예 판결
유족, 충격에 말없이 법원 나가…'무죄' 구은수, 답변 거부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받고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백남기 농민과 관련해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현장 책임자와 살수 요원들은 업무상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됐지만 국가 배상 등의 이유를 들어 가벼운 벌금형과 집행유예형이 내려졌다.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김상동)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구 전 청장에 대해 “구 전 청장의 자리와 화면 거리, 화면 크기 등 상황지휘센터 구조와 무전 내용을 고려하면 구 전 청장이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신용균 전 서울청 4기동단장(총경, 현 교통관리과장)과 살수 요원이었던 한석진·최윤석 경장에 대해선 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됐다. 신 총경과 최 경장에겐 각각 벌금 1000만원과 700만원이 선고됐다. 업무상과실치사 외에도 살수차 관리 일지를 조작한 혐의를 추가로 받는 한 경장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양형 이유에 대해 “피해자는 생명을 보호받아야 할 공권력으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며 “국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공권력에 대한 경고,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위로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고인들은 시위 현장에 직접 투입돼 보급된 장비로 명령에 따라 시위를 직접 방어하던 경찰관들일 뿐”이라며 “그 상황에서 꼭 그렇게까지 살수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의 과실 정도, 피해자의 행위가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친 점, 유족이 곡절 끝에 늦게나마 민사소송절차를 통해 국가로부터 4억9000만원 정도를 배상받은 점과 함께 경찰관인 피고인들에 대한 형벌이 신분에 미치게 되는 영향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한·최 경장에 대해 “당시 시위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려웠다”며 “백씨 상반신 뒷부분에 직사로 물줄기를 맞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혀 의식을 잃은 이후에도 17초간 백씨와 구조대를 향해 직수 살수를 이어갔다”고 판단했다.

신 총경에 대해서도 “백씨에 대한 살수 과정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살수차를 운용하며 시위대 보호 임무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살수차를 감시할 병력을 배치하지 않는 등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백씨의 사망원인이 살수차에 의한 두부손상이라고 판단했다. 백씨 사망원인은 진단서에 ‘병사’로 기재했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진술에 대해선 대한의사협회와 서울대병원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 다른 의료인들의 판단을 근거로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일축했다.

또 살수차 요원 등이 주장한 당시 현장에 있던 빨간색 우의를 입은 시위대의 백씨 타격 가능성에 대해선 “법의학자들은 백씨가 다른 충격에 의해 두부 손상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며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백씨 위로 넘어지는 과정에서 강한 충격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넘어지게 된 직접적 영향도 살수차의 살수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총경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해서도 “피해자는 경찰관들의 규정 위반으로 생명을 잃었다”며 “경찰관들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볼 수 없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한 경장이 살수차 관련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행사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인정했다.

백씨는 2015년 11월14일 열린 민중총궐기에 참석해 세종대로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충남경찰청 소속 한·최 경장이 몰던 살수차가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그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생명연명장치에 의지하다 2016년 9월25일 사망했다. 검찰은 정권교체 후인 지난해 10월에야 구 전 청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백씨 유족과 대리인은 판결 선고 후 충격을 받은 듯 “나중에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한 후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무죄를 선고받은 구 전 청장은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변을 거부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