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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영변 핵시설 사찰을 거부하며 불거진 북한 핵문제는 북미간 ‘제네바 합의’에 따라 수그러드는듯 했지만, 2002년 10월 북한의 새로운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남북한과 미·중·일·러가 참여하는 6자회담 회의체였다. 공전하던 6자회담은 제4차 회담 당시 의장국이었던 중국의 중재로 북한은 2005년 9월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와 IAEA로 복귀한다는 9.19 공동선언에 서명한다.
그러나 이 역시 북한 돈줄을 죄는 미국 공화당 강경파들이 주도한 ‘방코델타아시아(BDA) 제재’로 인해 구체화 되지 못했다. 2차 남북정상회담 등을 지나 4년여만인 2007년 2월에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조치인 2.13합의에 이르렀다. 9.19 합의는 크게 △단계적 비핵화 △북한에 대한 에너지원 제공 △대북경제 제재 해제 △북미 수교 △한반도 평화협정을 약속한 것으로 그 원칙은 ‘행동 대 행동’이었다. 비핵화를 위한 북한 행동에 따라 6자회담 참여 국가들의 지원이 결정되는 구체적 이행 계획을 담은 문서다.
10여년 만에 다시 시작된 북한 비핵화 논의는 큰 틀에선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이를 계승한 9·19 공동성명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10일 대북 특사단의 방북·방미 결과를 설명하면서 “비핵화는 1992년 서명한 한반도 비핵화 원칙이 있다”며 “다른 비핵화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바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를 의미하는 이른바 ‘CVID’ 원칙이다.
하지만 북한 핵문제가 과거의 ‘핵 개발’ 단계가 아닌 ‘핵무력 완성’에 이른 단계인 만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여야 5당 대표와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북핵 로드맵 입구는 핵동결, 출구는 핵폐기지만, 북핵이 고도화됐기 때문에 앞으로 검증을 거치며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한미 간 집중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