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긴축은 시중에 뿌려져 있는 돈을 직접 걷어가는 게 골자다. 그 충격파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이 역시 초유의 ‘금융 실험’이어서 불확실성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국내 금융시장의 영향이다. 중장기적으로 금리 상승 압력이 강해질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9년만에 양적긴축 선언한 연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다음달부터 보유하고 있는 자산을 매각한다고 밝혔다. 매달 100억달러 규모다.
연준의 양적완화 역사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준은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만 해도 주로 금융기관에 대한 유동성 공급 조치를 단행했다. 그럼에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고 실물경제 회복이 더디자, 그해 11월 ‘가보지 않은 길’인 양적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양적완화는 쉽게 말해 ‘최후의 수단’이다. 중앙은행은 경기가 부진할 때 통상 기준금리를 내려 대응한다. 돈의 값을 낮춰 대출을 유도하며 시중의 통화량을 늘리겠다는 의도다.
중앙은행의 주무대는 단기자금시장이다. 이곳에서 돈을 풀고, 또 돈을 흡수하며 기준금리 수준을 맞춘다. 이를테면 한국은행은 통화안정채권(통안채)를 사고팔며 이를 조절한다. 이같은 단기금리를 통해 경기와 물가에 좌우되는 장기금리에도 영향을 미치겠다는 게 전통적인 통화정책이다.
하지만 기준금리를 내리고 또 내려 0%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전통적인 개념으로 중앙은행의 정책 무대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경기는 엉망이라면. 이런 고민을 했던 게 2008년 연준의 모습이다.
고심 끝에 나온 게 자산 직매입이다. 장기국채와 주택저당채권(MBS) 등을 직접 사서 시중에 돈을 뿌리고 장기금리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경기를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산매입 프로그램은 총 세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사들인 자산만 4조5000억달러 규모, 우리 돈으로 5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연준은 2014년 10월 이후로는 추가로 자산을 사들이지 않았고, 급기야 다음달부터는 보유 채권을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자산을 처분한다는 것은 시중의 돈이 연준으로 흡수된다는 의미다.
여기에는 양적완화로 경기 부양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자신감과 함께 금융위기 전에는 찾기 어려웠던 신용위험자산이 확대되면서 대차대조표가 질적으로 악화했다는 위기감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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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역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 입장에서는 ‘트라우마’도 있다. 2013년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사했을 때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이 나타났던 게 대표적이다. 보유자산 자체를 줄이는 것은 테이퍼링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승철 한은 부총재보는 최근 “머지 않은 미래에 있을 또다른 테이퍼 탠트럼이 주요 관심사항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선제적으로 양적긴축에 나설 경우 아직 양적완화를 진행 중인 유럽과 일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관심사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의 양적긴축은 점진적으로 금리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문홍철 동부증권 연구원도 “어느 시나리오든 박스권에 머물고 있는 장기금리는 상승 방향이 우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금리 상승은 1400조원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특수성 때문에 더 우려된다. 가계부채 문제가 불거지면, 당장 민간소비 혹은 건설경기 등의 경로로 실물경제에도 직격탄이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