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外 판매자·소비자도 울리는 쿠팡…"투명한 이사회 만들어야"

이상원 기자I 2021.07.05 20:42:03

''혁신보다 착취'', 쿠팡 사태 해결 모색 토론회 5일 열려
직원 "생계 위해 어쩔수 없이 매일 일용직 신청해야"
판매자·소비자 모두 기만 ''아이템위너'', 품질저하 조장
"투명하고 공정한 이사회 구성해 지배구조 개선해야"

[이데일리 이상원 기자] “김범석 의장의 최종 목표가 고객들이 ‘쿠팡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쿠팡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5일 오후 1시 30분 서울시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 2층 상생룸에서 ‘혁신인가? 착취인가? 쿠팡 사태 해결 위한 정부·국회 역할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사진= 이상원 기자)
작년부터 10명에 이르는 ‘쿠팡맨’ 사망과 최근 ‘새우튀김 갑질’,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등 잇단 사회적 문제를 유발한 ‘쿠팡 사태’ 해결을 위해 이 회사의 기형적인 노동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각계 제안이 나왔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쿠팡 사태 해결 위한 정부·국회 역할 모색 토론회’에서 서치원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우리가 쿠팡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기후위기를 보는 시각과 비슷하다”며 “시장 독점을 위한 전략이 결국 모두에게 불이익을 가져올 것이지만 서비스의 편리성에 가려져 잘 부각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 죽음의 사업장으로 만들어 버린 ‘쪼개기 계약’

토론 참가자들은 쿠팡의 기형적 고용구조에 따라 결국 노동자, 소비자, 판매자까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노동구조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쪼개기 계약’이다. 쿠팡물류센터의 경우 일용직 노동자가 68%, 3·9·12개월 계약직 노동자가 29.5%로 고용의 97.5%를 차지했다. 정규직 직원은 오직 2.5%에 불과했다. 언제든 직원을 바꿀 수 있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다.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인천센터분회장은 “계약직은 2년을 채워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데 12개월짜리 계약직 직원들의 계약이 불발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한 쪼개기 계약이 자발적으로 노동강도를 높이거나 회사에 순응하는 구조를 만든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계약에서 탈락하면 3개월간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도 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3개월 실직 상태에 놓이기 싫어 매일매일 입사지원을 하는 일용직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UPH(Unit Per Hour)’라는 쿠팡의 체계가 근로자 착취를 공고히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UPH는 근로자들이 일정 시간 동안 처리하는 업무량과 속도를 실시간 측정하는 것이다.

장귀연 노동권 연구소 소장은 “계약을 위해 남들보다 잘해야 하는데 더 빨리, 더 많이를 강조하다 보니 전체 UPH가 올라가 경쟁이 훨씬 심해지고 산재가 발생하는 것”이라며 “쿠팡이 죽음의 사업장이 되지 않기 위해 소비자와 시민단체의 압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판매자·소비자까지 기만하는 ‘아이템위너’

이처럼 출혈경쟁, 실적 지상주의 경영은 직원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까지 이어진다. 쿠팡은 이른바 ‘아이템위너’를 통해 플랫폼을 이용하는 판매자와 소비자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아이템위너는 같은 상품을 파는 판매자가 다수인 경우에 최저가를 제시한 판매자를 ‘대표 상품판매자’로 소비자에게 단독 노출해 독점 판매 권한을 부여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소비자에게 가장 먼저 보일 수 있도록 판매자가 가격을 낮춰 경쟁하는 ‘아이템위너’의 과정(출처= 참여연대)
판매자 A가 아이템위너였다가 B가 A보다 가격을 낮춰 아이템위너로 선정될 시, A의 상품명과 대표 상품 이미지, 고객후기, 질의 답변 모두가 판매자 B의 것이 된다.

실제로 지난 4월 C씨는 쿠팡에서 산지 직송이라는 이미지와 200명 이상의 상품평을 확인한 후 ‘제주도 산지 직송 귤’을 주문했다. 그러나 C씨가 받아본 것은 제주도가 아닌 부산에서 발송한 품질이 떨어지는 귤이었다.

확인해 보니 같은 상품을 판다고 하며 가격경쟁에 뛰어든 판매자가 아이템위너가 된 후 자신이 제주도에서 귤을 받아 C씨에게 보내줬다는 것이다. 결국 원래 실제 제주도 산지 직송 귤을 팔던 판매자와 C씨 모두 피해자가 된 셈이다. 이러한 유통구조를 방관한 채 쿠팡은 최저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아이템위너를 통해 상품이 아닌 재질 및 디자인이 조악한 유사제품을 속여 팔 가능성이 농후한데 이미 의류, 식품, 잡화 등에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상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판매자의 노력을 유도하지 않고 최저가 출혈경쟁을 유도해 결국 피해자만 품질 낮은 상품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는 혁신이 아닌 판매자·소비자 기만행위”라고 지적했다.

김남근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정책위원장 변호사는 “쿠팡의 이러한 경영 방식을 바꾸려면 소비자, 판매자, 배달기사를 대표하는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로 구성된 개방적인 이사회를 만들어 견제,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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