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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국가계약시 물가변동 따른 계약금 조정, 강제법규 아냐"

한광범 기자I 2018.12.18 15:08:15

현대로템, 철도공사 상대 ''물가변동분 230억 지급소송''서 사실상 패소
"현대로템은 독점적 고속철도업체…철도공사, 거래상 지위 남용 의문"
동일본 대지진 따른 지체상금 97억원 감액 청구는 현대로템 승소 취지

대법원 청사.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국가가 당사자로 체결한 계약에서 물가변동 등에 따른 계약금 조정을 규정한 국가계약법 19조는 강행법규가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현대로템이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물품대금 지급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전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현대로템은 2009년 11월 철도공사와 3505억원 규모의 화물용 전기기관차 56량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엔 지체상금 지급 기준과 함께 “물가변동에도 불구하고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특약조항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현대로템은 주요 부품 공급업체인 일본 기업 도시바와, 도시바 하청업체인 히타치전선이 부품을 제대로 납품하지 못하자 납품기한을 지키지 못했다. 이에 철도공사는 지체상금 97억원을 제외한 금액만 현대로템에 지급했다.

이에 현대로템은 철도공사를 상대로 330억원 규모의 물품대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로템은 소장에서 “동일본 대지진은 천재?지변이므로 계약에 따라 지체상금이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계약서의 특약조항은 무효라며 물가인상률에 따라 233억원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1심은 특약 조항 무효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고 지체상금 50% 감액해 철도공사가 현대로템에 49억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1심은 “국가계약법 19조는 강행규정이 아니다. 아울러 특약조항이 현대로템의 이익을 부당하게 제안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지체상금과 관련해선 “도시바의 부품공급 지연이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 사유라거나 현대로템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여러 사정을 감안하면 50% 감액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특약조항과 관련해선 국가계약법 19조를 강행법규로 해석해 현대로템의 손을 들어주고, 지체상금과 관련해 철도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2심 판결로 철도공사가 현대로템에 지급해야 할 금액은 234억원으로 크게 높아졌다. 2심은 “법의 취지는 장기간 물품제조?납품 계약 체결 후 물가변동에 따른 수익 저하의 위험으로부터 국가가 계약상대방으로서 사회·경제적 약자인 국민이나 하도급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취지에 비춰 이를 위반한 개별약정의 사법상 효력을 부인해야만 비로소 그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판결을 뒤집었다. 특약 효력을 인정하는 한편 지체상금 감액을 하지 말도록 한 것이다. 대법원은 특약과 관련해선 “특약이 계약상대자에게 다소 불이익하다는 점만으로는 부족하고 국가 등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특약을 정함으로써 계약상대자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현대로템은 국내 유일의 고속철도차량 공급 업체로서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며 “철도공사가 현대로템에 대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할 위치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계약 당시 물가상승 가능성은 현대로템도 예상했을 것이므로 특약이 계약상대자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 기대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체상금과 관련해선 “동일본 대지진이 도시바 생산 설비에 직접적 피해를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본 내 전반적인 산업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을 것임이 경험칙상 인정된다. 불가항력으로 보기 어렵더라도 생산 공정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97억원의 지체상금을 감액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결론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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