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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른 면세점 대전]오너들 자존심 걸었다

안승찬 기자I 2015.06.01 19:04:21
(왼쪽부터)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이번 시내면세점 유치전에는 각 기업들의 오너들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15년만에 나오는 수도권 지역의 추가로 지정되는 시내면세점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공항 면세점은 매년 수천억원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시내면세점은 매출액의 0.05%만 내면 된다. 유통기업에게 이만한 사업 기회는 당분간 없다.

오너가 직접 뛰고 있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 시내면세점 입찰에 ‘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승패에 따라서 오너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후폭풍이 일 수 있다.

삼성가(家)의 장녀인 호텔신라(008770)의 이부진 사장은 이번 시내면세점 입찰 과장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을 받았다. 현대가(家)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손을 잡는 파격을 선보였다.

호텔신라는 현재 국내 2위 면세점 사업자다. 신규 사업자인 현대산업개발을 끌어들여 과점 논란을 잠재우는 효과와 함께 현대산업개발이 보유하고 있는 ‘용산’이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얻었다. 현대산업개발은 호텔신라를 통해 경험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보완했다.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다.

최근 삼성물산(000830)제일모직(028260)이 합병하는 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중심으로 승계구도가 굳어가는 과정에서 이번 시내면세점 입찰은 이 사장의 경력능력을 대내외적으로 입증하고, 독자생존 가능성을 검증받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명동의 신세계(004170)백화점 본점 본관을 통째로 시내면세점으로 내놓는 승부수를 띄웠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화점 자리로, 그룹의 모태가 되는 상징적인 곳이다. 정 부회장의 결단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현재 서울 시내면세점은 경쟁사인 롯데가 독주하는 시장이다. 전체 시내면세점 시장의 45.4%를 롯데가 차지하고 있다. 명동의 관광객을 싹쓸이하고 있는 셈이다. 롯데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시내면세점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세계는 그룹차원의 전사적인 입찰 준비에 뛰어든 상태다.

조금씩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는 정지선 현대백화점 그룹 회장 역시 일찌감치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점을 전면으로 내세웠다. 강북에 몰려 있는 시내면세점을 강남으로 확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지역안배론’의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여행사, 패션회사 등 중소·중견기업과의 합작법인을 설립하면서 ‘명분’을 만들었다는 점도 강점이다.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도 ‘여의도 면세점’ 카드로 시내면세점에 뛰어들었다. 여의도 63빌딩에 면세점을 열어, 쇼핑과 엔터테인먼트, 식음료 시설을 연계한 63빌딩 문화쇼핑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성이다. 김 회장의 통큰 스타일은 이미 재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번 면세점 유치를 위해 김 회장의 통큰 베팅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이밖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독과점 논란을 의식해 뒤늦게 동대문 피트인을 면세점 후보지로 결정하고 출사표를 냈지만, 속내가 복잡하다. 오는 연말 소공점과 월드타워점의 시내면세점 특허가 만료되기 때문에 필승 수성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경영진과 실무진의 입장차가 커 내부적인 조율이 필요하다.

박성철 이랜드 회장은 홍대상권을 면세점 사업지로 결정하고 글로벌 면세기업인 ‘듀프리’, 중국 최대 여행사 ‘완다그룹’과 협업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동안 중국에서 쌓아온 경험을 총출동한 전략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인데 승자는 시내면세점이라는 엄청난 이권이 생기고 떨어진 사업자는 경쟁사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된다”며 “결과에 따라 오너들의 희비가 크게 엇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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