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동양화…문턱 낮춘 야외오페라 통했다

김미경 기자I 2017.08.28 18:10:00

국립오페라단 ‘동백꽃 아가씨’
26~27일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
네이버TV로도 생중계 눈길
채시라 변사 기용도 성공적
일각 한복에 원어노래 어색

26, 27일 양일 동안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올린 야외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중 비올레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하영이 연기하고 있다(사진=국립오페라단).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올 여름 국내 공연계 ‘빅 이벤트’라 할만하다. 비 그친 초저녁 하늘과 광장의 푸른 잔디는 그 풍광만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원한 바람 사이로 낭랑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에도 취할만했다. 왜 ‘야외’여야 했는지 직접 경험한 뒤에야 이해가 됐다.

26, 27일 저녁 8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기념해 선보인 국립오페라단의 ‘동백꽃 아가씨’는 25억 원이 투입된 대형 야외오페라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무대와 연출, 조명까지 도맡아 일찍부터 화제를 모았다. 베르디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에 한국적 색채를 더해 배경을 18세기 조선시대로 옮겨왔다.

이날 베일을 벗은 공연은 평창 올림픽의 성공 기원과 문화 축제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목표에도 근접했다. 1만~3만 원의 저렴한 티켓 가격과 네이버TV로도 생중계 해 소위 고급문화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오페라의 문턱을 대폭 낮췄다는 평가다.

변사로 등장한 배우 채시라(사진=국립오페라단).
우선 ‘날씨’가 도왔다. 지금까지 국내서 공연한 대형 야외 오페라 대부분은 궂은 날씨 등으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2003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연 ‘투란도트’와 같은 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아이다’는 질 낮은 음향과 관람 환경 등으로 혹평을 받았다. 2012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개최한 ‘라보엠’은 태풍으로 연기됐다가 실패로 마감했다.

이번 공연도 잦은 비로 리허설이 미뤄지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행히 공연 이틀간 비는 오지 않았다. 야외오페라 특성상 마이크가 사용됐다는 점에서 실내 오페라 같은 섬세한 사운드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65개의 스피커를 통해 비교적 또렷하게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객석까지 전달됐다.

한국인 테너 최초로 2004년 플라시도 도밍고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김우경과 독일의 함부르크 국립극장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이하영은 풀벌레와 주변 소음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절창을 보여줬다. 비올레타 역에 내정됐다 건강을 이유로 고사한 소프라노 홍혜경 대신에 구원 등판한 이하영은 드라마틱한 감정변화를 절절하게 표현했다. 알프레도 역의 김우경은 2막 아리아에서 목소리가 갈라지긴 했지만 서정적 미성이 돋보였다.

산만해지기 쉬운 야외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는 데도 확실히 성공했다. 가로 28m, 세로 8m 크기의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엔 조선 민화와 책가 등을 차용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변사로 등장한 배우 채시라는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원작에는 없지만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막 사이마다 총 4차례 등장한 그는 세련되게 이야기를 압축해 들려줬다.

드레스 대신에 택한 한복 의상도 눈을 즐겁게 했다. 비올레타의 상황에 따라 붉은 저고리, 초록색 치마, 하얀 소복을 입혀 그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부채 등의 소품 활용도 인상적이었다. 1세대 스타일리스트 서영희와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이 완성해낸 협업이다.

다만 장면 전환이 부자연스러웠던 점, 오케스트라 연주가 성악가들의 목소리에 가끔 묻힌 점, 3막 비올레타의 죽음 피날레 등과 같은 극의 해석은 아쉬웠다는 평이다. 한복을 입은 성악가들이 이탈리아 원어로 노래하는 데서 오는 어색함의 간극도 지적을 받았다. 26일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하는 동안 누리꾼들이 이 부분을 적지 않게 꼬집었다.

26일 저녁 8시부터 네이버TV를 통해 생중계한 야외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의 한 장면 캡처 이미지.
26, 27일 양일 동안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공연한 야외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의 한 장면(사진=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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