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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데일리 김상윤 이진철 기자] 5일(현지시각)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1차 협상은 양국의 이익균형이라는 원칙에 따라 치열한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하지만 실상은 자국 무역수지 적자 해소를 내건 미국의 전방위적 공세를 어떻게 막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다. 우리 협상팀이 방어와 역공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하느냐에 개정협상의 성패가 달려 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지역의 관심사인 자동차·철강 분야를 비롯해 농업분야에서 실리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국측은 FTA로 피해를 입은 농업분야에 대한 추가 개방을 막고, 그간 독소조항으로 꼽혔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S)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개정협상은 상품·투자·서비스 등 협정 전체를 재검토하는 전면 개정방식이 아닌 양국의 이해에 따라 일부 조항에 대한 개정을 시도하는 ‘부분 개정’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이 지지부진한 마당에 장기간 한미FTA 개정에 총력을 기울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여러 분야를 건드리면서 실리를 챙길 가능성도 남아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개정 협상은 부분개정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라면서도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도중에 전면개정 방식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1차 협상인 만큼 양측은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협정문 분야·조항을 각각 제시하면서 향후 본격적으로 진행될 협상의 큰 골격을 짤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측은 상품분야의 경우 한미 간 무역 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잔여관세 철폐 가속화 및 주요 품목에 대한 관세조정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동차분야의 경우 환경 기준 등 비관세 장벽 해소 등에 상당한 공을 들일 전망이다.
우선 미국은 자동차 분야의 경우 현재 국내 안전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업체당 면제차량 수 2만5000대(쿼터)를 더 늘려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그간 무역장병보고서 등에서도 수차례 언급됐던 부분으로 이를 통해 국내 판매량을 더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의 국내 판매가 부진해 쿼터 물량을 밑도는 1만대 수준에서 팔리는 터라 쿼터를 늘려도 국내 완성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우려되는 부분은 자동차와 철강 분야에 대한 원산지 규정 변경이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 개정 협상을 하면서 NAFTA산 자동차로 인정받을 수 있는 현행 자동차의 원산지 규정을 역내 부가가치기준 62.5%에서 85%로 상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국산 부품 50% 의무사용도 포함돼 있다. 만약 NAFTA 개정협상이 그대로 한미FTA에 미칠 경우 우리 자동차 업계는 원산지 인증 비용이 늘거니와 미국 공장의 경우 미국산 부품을 늘려야 한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미국 공장에서 대부분 국내 하청업체 부품을 사용하고 있는 터라 ‘밸류 체인’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농업부문 ‘레드라인’.. 독소조항 ISDS 개선 마련 요구 ‘관심’
농축산물 시장 추가 개방도 미국이 협상 전략 차원에서 압박카드로 꺼낼 수 있다. 정부는 특히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며 농업부문은 ‘레드라인’이라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3일 기자들과 만나 “한미FTA 협상단을 이끌고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농업분야 추가개방은 양보해선 안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농업을 지키다보면 다른 분야에서 시장을 열어줘야 하는 만큼 오히려 협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정부는 미국이 농업을 건드릴 경우 ‘역공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관측된다. 농업계는 특히 이번 한미FTA 개정협상에서 농업분야를 제외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소고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조항 등 불합리한 독소조항들을 정상화하는 데 정부가 공세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 등 축산업계는 미국산 소고기의 관세가 더욱 줄어들면 생존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세이프가드 쿼터 수준이 낮춰질 경우 급증하고 있는 미국 소고기 수입 등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또다른 ‘역공 카드’ 중 하나로 ISDS 제도 개선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ISDS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 등으로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분쟁 해결 제도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ISDS로 인해 정부의 공공 정책 기능이 무너지고, 거액 배상을 노리는 민사소송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면서 “이번 협상에서 일부분 손댈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