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대출은 물론 주식, 회사채 등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이 늘면서 투자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 한동안 현금 쟁여두고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기업들이 새 정부 들어 불확실성 해소와 경기활성화 정책 기조로 투자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경제지표가 아직 엇갈린 모습을 보이고 있고 회복세도 특정 업종에 국한돼 있어 기업이 본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상당하다.
◇현금 줄고 차입·직접조달 증가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대기업의 원화대출 잔액은 전월보다 5000억원 늘었다. 3월 2조4000억원 줄어 순상환기조였지만 다시 차입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이 대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4월 신규 취급액 기준 대기업 평균 대출금리는 3.05%로 전달에 비해 0.18%포인트 급락했다. 이는 작년 6월 이후 최대폭 하락이다.
대기업 대출 금리는 가계대출처럼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신용도와 영업상황 등을 감안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달 어떤 기업이 대출을 받았는지가 가중평균금리에 영향을 준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시장금리가 하락한 이유도 있지만 신용도 높은 대기업에서 자금을 빌리면서 가중치에 더 영향을 줬다”며 “금리뿐 아니라 대출 규모와 직접자금조달 규모도 고려해야 하는데 최근 경기가 좀 좋아지면서 투자회복 기대감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직접 자금조달 역시 늘어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지난 4월 회사채 발행규모는 16조9778억원으로 전월대비 6조6000억원 가량 늘었다. 일반 회사채가 4조3770억원어치 발행됐고 이중 시설자금이 5452억원 수준이었다. 기업어음과 전자단기사채 발행액도 전월보다 2조8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
기업들의 보유현금은 감소세다. 과거 투자할 곳 없어 현금 쌓아놓기에 바빴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금융정보 제공업체인 FN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말 기준 10대 그룹 중 연결대상이 아닌 곳을 제외한 계열사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07조6920억원으로 작년 말에 비해 5조원 가량 줄었다.
◇자금조달은 투자 선행지표…확산할지는 지켜봐야
이처럼 기업 자금수요가 늘어난 데에는 우선 계절적 요인이 작용했다. 12월 결산법인은 전년도 영업실적에 대한 법인세를 3월에 납부해야 하고 연결법인은 4월 말까지 내야 한다. 4월은 부가세 예정신고 납부 월이다. 3월 주총을 마친 12월 결산법인은 4월에 배당금을 지급한다. 나갈 돈이 많아 조달에 나섰을 것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그동안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있었던 만큼 이처럼 추가 자금조달에 나선 것은 향후 투자를 위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경제지표는 다소 엇갈린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수출이나 심리지표는 개선세가 뚜렷하다. 5월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3.4% 늘어 7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것도 벌써 5개월째다.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8.0으로 전월보다 6.8 포인트 올라 세월호 참사 이후 3년 1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4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설비투자는 전월에 비해 4% 감소했지만 3월 13.3% 증가한 데에 따른 기저효과가 컸다는 분석이 높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4.1% 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자리 창출과 경기 활성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기업들도 투자를 통해 정부 정책에 부응할 가능성이 크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기업의 자금조달은 투자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며 “반도체를 비롯한 관련 업종에서 투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데 본격적으로 회복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수출 호조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특정 업종 주도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기업 전반으로 투자가 확산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업 투자가 업종 전반에 걸쳐서 늘어나려면 수출이 좀 더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내수에서도 소비가 뚜렷하게 개선돼야 한다”며 “지금은 일부 업종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