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햇수로 10년째 겪은 사법 리스크를 사실상 털어내자, 재계에서는 이런 반응이 나왔다. 그동안 재판 일정 등에 치여 주춤했던 공격 경영 기조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산업 대전환기와 주요국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패권전쟁이 동시에 찾아온 엄중한 시기인 만큼 ‘이재용식(式) 뉴삼성’을 위한 공격 투자의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선대 뛰어넘는 승어부 전략 절실”
3일 재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3부는 이날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원심과 같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은 이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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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은 이번 법원 판단으로 지난 2020년 9월 재판에 넘겨진 이후 4년 5개월 만에 혐의를 벗게 됐다. 지난해 2월 당시 1심 재판부는 3년 5개월의 심리 끝에 전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2심 재판부 역시 같은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날 판결은 이 회장이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시작으로 햇수로 10년째 떠안고 있는 사법 리스크의 마지막 쟁점까지 털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영 족쇄’가 사실상 풀렸다는 의미다.
재계 한 고위인사는 “수시로 해외에 장기 체류하며 경영 구상에 몰두한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과 달리 이 회장은 주 1~2회씩 이어진 재판 등으로 해외 출장 자체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 회장은 2023년 5월 약 3주, 지난해 6월 약 2주 일정으로 각각 다녀온 미국 출장 정도를 제외하면 장기 체류 자체가 전무했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시달린 지난 10년간 삼성그룹 안팎은 변화가 작지 않았다. 무엇보다 삼성을 상징했던 반도체 사업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과거 경쟁 상대로 여기지 않았던 SK하이닉스에게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에서 뒤졌고, 세계 최대 파운드리 TSMC와 점유율 격차는 계속 벌어졌다. 이와 함께 중국의 테크 굴기, 트럼프 2기 불확실성, 미중 패권전쟁 등 메가톤급 외부 리스크들이 쏟아졌다. 이 회장이 지난해 11월 항소심 결심 공판 최후진술을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녹록지 않다”며 삼성 위기론을 직접 거론했을 정도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선대회장을 뛰어넘는 승어부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오너 경영의 진수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기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이 회장만의 경영 방식 필요한 때”라며 “오너로서 사업을 직접 챙기고 책임 경영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이 회장은 경쟁사를 빠르게 따라잡는 삼성 특유의 ‘패스트 팔로워’ 기조보다 세상에 없던 기술을 창조하는 ‘퍼스트 무버’로서의 과제가 더 큰 상황이다.
AI 대전환기, 대규모 M&A 필요성
이에 따라 뉴삼성 구축을 위한 이 회장의 경영 행보가 한층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주력 캐시카우인 반도체 사업의 정상화가 꼽힌다. AI, 로봇,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공격 투자 역시 절실하다는 평가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AI 반도체 고도화 분야의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삼성이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제품의 AI화(化)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재계 안팎에서는 삼성이 대규모 투자 결정이나 메가톤급 인수합병(M&A) 추진 등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실제 이 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인 2021년 8월 당시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자하는 내용의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석방된 지 6개월 만인 2018년 8월에도 미래 성장 기반을 위해 3년간 180조원을 신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설(說)로만 돌았던 대형 M&A가 가시화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AI 산업 대전환기임에도 M&A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시장에 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뉘앙스(AI 음성인식·2021년), 오픈AI(생성형 AI·2023년) 인수 △AMD의 자일링스(AI 반도체 설계·2020년) 인수 △인텔의 모빌아이(자율주행·2017년) 인수 등 산업계를 뒤흔들 만한 빅딜이 이어지는 와중에 삼성전자는 유독 조용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대형 M&A는 2017년 9조원을 투자한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인수가 마지막이었다.
실탄은 넉넉한 편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성자산은 103조7765억원으로 국내 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았다. 1년 전보다 12조원 가까이 증가한 수준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책임 경영 차원에서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여부를 주목하는 기류도 읽힌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그동안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복귀해서 책임 경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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