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지난 28일 강원도 철원군 화살머리고지에 있는 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화살머리고지는 6.25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철의 삼각지’ 전투지역 중 하나다.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국군 2사단 및 9사단, 미군 2사단, 프랑스대대와 중공군 및 북한군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고지전을 치렀다. 우리 군 전사자 200여명, 미군과 프랑스군 100여명 등 300여명이 이곳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군과 중공군 사망자는 3000여 명에 이른다. 군 관계자는 “철원 평야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백마고지”라며 “백마고지를 확보하려면 반드시 인접한 화살머리고지를 점령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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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격전지였음은 그동안 발굴된 유해와 유품 수만 헤아려도 짐작할 수 있다. 현장 관계자는 지난 달 1일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54곳에서 325점의 유골(전사자 시신 50여 구 추정)을 발굴하고, 모두 17구의 유해를 수습해 중앙감식소로 보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 24일에는 국군 전사자로 추정되는 ‘완전 유해’도 발견됐다. 이 유해 주변에서는 국군 하사 철제 계급장과 철모 등이 발굴됐다. 유해의 쇄골 부근에선 인식표 줄도 나왔다.
다수의 유해가 나온 우리 군의 ‘동굴형 진지’ 역시 6·25 전쟁의 비극을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전쟁 당시 이곳은 이른바 ‘동굴 작전’을 실시한 지역이다. 적이 포위한 상황에서 동굴형 진지로 몸을 숨기고, 진지 위로 포병사격을 요청해 적을 섬멸하는 전술이다. 국군 2사단 참전용사들 증언에 따르면 1000발 정도의 포탄이 이곳에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이 지역은 ‘마이크로 포인터’라는 장비로 금속을 탐지하면 당시 포탄 파편으로 인해 금속 반응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동굴형 진지에서 국군 추청 유해의 발굴이 진행했다. 거의 완전한 모습에 가까운 유해는 두개골과 팔, 허벅지, 정강이 뼈 등이 온전한 모습으로 발굴됐다. 전문 발굴병들은 지난달 12일 철모 안에 있는 두개골 조각을 처음 식별하고 1개월 넘게 발굴 작업을 진행해왔다. 발견된 철모는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다. 90% 정도 발굴된 유해는 수습 후 약식 제례를 진행하고 정확한 분석을 위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로 보내진다.
군 관계자는 “산화하신 선배님들을 가족에게 돌려드리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유해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작은 한 점의 뼛조각이라도 찾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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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유품 역시 모두 2만3000여 점에 달한다. 그중에는 프랑스군 인식표 1점과 미군 방탄복 5점, 중국군 방독면 14점 등 외국 참전군의 유품도 적지 않다. 원형 그대로의 미군 방탄복과 중국군 방독면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국군 방독면은 1938년 일본에서 생산한 것으로 확인돼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취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M1소총탄과 60㎜ 고폭탄, MK-2 수류탄, M1 총열 등 국군과 미군, 유엔 참전국 군인들이 사용하던 무기뿐 아니라 TT탄창, 막대형 수류탄, RPG-6 대전차 수류탄 등 북한군과 중공군의 무기들도 다수 발굴됐다. 현장 관계자는 “M1소총 총열 안에는 탄까지 남아있었다”며 “총을 다 쏘지도 못하고 산화하신 분의 유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병들이 1평 남짓한 곳의 땅을 호미로 파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총탄을 묶는 ‘탄 클립’이 나왔다. 6·25전쟁 당시 사용한 M1소총용 탄 클립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호미질에 M1소총탄으로 추정되는 유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한 번 땅을 파자 다른 소총탄 유품이 나왔다. 장병들은 유품들을 조심스럽게 바구니에 옮겨 담았다.
이날 화살머리고지 능선에서는 북한군이 작년에 지뢰 제거 등을 위해 조성했던 오솔길도 보였다. 그러나 북한 군인들은 아직 유해발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일부 우리측 전사자 유해가 묻혀 있는 지역이 북측에 있어 북한이 협조만하면 당초 예정됐던 지역에서의 유해발굴 작업을 올해 안에 끝낼 수 있다”면서 남북 공동의 유해 발굴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은 최근 우리 군의 유해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 일대에 간이 감시초소를 설치했다. 우리측의 DMZ 내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