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협상 타결 거센 '후폭풍'…헌법소원 제기 가능성도

장영은 기자I 2015.12.29 17:32:04

정부간 합의 도출했지만 피해자·국민정서 반발은 확대
''굴욕적 협상'' 지적에 외교부 직접 피해자 설득에 나서기도
나눔의 집,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 언급…재협상 여론 비등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12월 28일 한일 정부간 타결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후폭풍에 휘말리고 있다. 정부는 역대 제시됐던 안에 비해서 ‘진전된 성과’이며 한일 관계의 오랜 난제를 풀었다며 자평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 당사자와 국민정서 등의 ‘역풍’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 등에서 주장해 온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 인정과 그에 따르는 배상 조치가 명시되지 않았는 점을 비롯해 소녀상 이전·철거 가능성, ‘불가역적인 해결’을 명시한 점에 대해 비판 여론이 거세다.

◇ 협상은 타결됐지만 여론의 반발은 ‘이제 시작’…시민단체 “굴욕적인 협상”

1990년 초 피해자 공개 증언으로 시작된 한일 정부간 싸움은 끝이 났는지 모르지만, 내부적인 진통은 일파만파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인 ‘나눔의 집’측에서는 정부가 개인의 인권 침해 문제를 의사 반영 없이 합의한 점을 지적하며 헌법소원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48개 시민단체들은 29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위안부 협상에 대해 굴욕적인 합의라고 규탄했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피해자들이 요구해온 법적 사죄와 배상을 외면했다”면서 “피해국인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 일본 정부가 기금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가해국임을 인정하고 배상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외교부 1·2차관이 이날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각각 방문해 피해자 설득에 직접 나서기도 했지만, 반응은 냉랭했다. 서울 마포구 정대협 쉼터에서 임성남 1차관을 만난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왜 우리를 두번 죽이려 하느냐”면서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되는 것 아니냐”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 전문가들 “내용 뜯어보니 진전 없다”…합의 구속력도 의문

전문가들의 입장도 비슷하다. 정부는 이번 협상안이 이명박정부 시절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제시한 ‘사사에안’보다 진전된 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사에안은 물론 이전 고노담화 등과 비교해도 오히려 후퇴한 방안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사사에안은 총리의 공식 사죄, 정부 예산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금전 지급, 주한일본대사의 사죄 등을 골자로 했다. 정부는 당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이 ‘도의적’인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안이 진일보했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일본은 법적 책임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베 총리의 사죄는 기시다 외무상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대독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장희 한국외대 명예교수(국제법 전문)는 “한마디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재판(再版)”이라며 “불법행위의 법적 책임에 대한 명시적인 인정도 받아내지 못하고, 피해자와의 상의도 없이 ‘최종적이다, 불가역적이다’라는 합의를 도출했다. 이런 표현은 국제법적으로 봤을 때도 이례적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북핵 폐기 때나 쓰는 표현이었다”며 “정부가 이 문제의 최종 타결에 못을 박음으로써 이제 국내 갈등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산적한 외교 현안이 많은 가운데 국력을 엉뚱한 데 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환 계명대 일본학과 교수는 “고노담화에서 이미 당시 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것을 정부 차원의 담화로 발표했다”며 “어떤 책임을 느끼는지도 불분명하고 (공동기자회견이라는) 형식으로 봤을 때도 크게 진전이 없다”고 꼬집었다.

◇ 지원재단·소녀상 이전 등 갈등의 불씨 남겨

지원재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애초 지원 기금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그 배상으로써 거론되던 방안이다. 단지 금전적인 대가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합의안에 따르면 가해자인 일본 정부는 뒤에서 예산만 지원할 뿐 지원 사업의 주체는 우리 정부가 되면서 책임의 소지가 흐려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회담 직후 합의 사항인 재단 설립에 대해 “배상은 아니다”라며 “한일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은 과거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관련단체와 협의해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사실상 일본측의 철거 요구를 받아들인 것과 다름 없다는 우려도 높다.

정부는 이전까지 소녀상 이전 및 철거는 정부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지만, 합의문에는 이를 넣음으로써 분란의 불씨를 만들었다.

또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 위안부 문제의 기념비적인 상징물인 소녀상 철거 가능성과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 재론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은 일본측의 진실성을 믿을 수 있겠냐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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