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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10일 공개한 ‘반도체 수출 경기사이클 이번에는 다를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AI 혁명이라는 구조적 변화에 힘입어 “이번 확장기는 AI 인프라 및 기기 수요에 힘입어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혁명·대중화 당시와 유사하게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다시 한 번 강한 확장세를 보이고 있다. AI 서버 투자와 고성능 메모리(HBM) 수요가 견조하게 이어지면서, 반도체는 글로벌 교역 불확실성 속에서도 한국 수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 수출은 미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 DDR4 단종 전 선수요 등 복합적 요인으로 급증세를 나타낸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 확장기가 지속되면서 지난 반도체 경기 순환의 평균적인 주기 등을 근거로 곧 수축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000년 이후 한국 반도체 수출은 6차례의 뚜렷한 경기 순환을 겪었다. 과거 확장기는 대체로 2년가량 지속됐고, IT 기기(PC·스마트폰)나 서버 등 새로운 수요가 그 촉발점이 됐다. 확장기에는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투자해 생산능력을 키웠고, 이로 인한 과잉공급은 곧 수축기로 이어졌다. 수축기는 확장기의 절반 정도 기간에 급격히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한 임웅지 한은 국제무역팀 차장 등은 “이번 확장기는 AI 혁명이라는 새로운 수요가 촉발했다는 점에서 2000년대 초 IT혁명·대중화기와 유사하다”며 “소비자 기기 중심의 확장국면보다 이번 AI 인프라 중심의 확장기는 더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AI가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빅테크에서 일반 기업, 국가로 AI 인프라 투자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중국, EU,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국이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다. 로봇, 자율주행차와 같은 새로운 AI 기기가 계속 발굴되면서 반도체에 대한 수요를 견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HBM 등 첨단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 제품과 달리 기술력과 고객 맞춤형 생산이 중요해, 선도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승자독식’ 현상이 뚜렷하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HBM 기술 고도화와 고객사 확보에 주력하면서 이번 확장기의 수혜를 크게 누리고 있다.
다만, 리스크도 적지 않다. 미국의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현재의 선(先) 수요 효과가 사라지며 수출이 둔화될 수 있다. 특히 DDR4 등 범용 제품은 관세 부과 시 타격이 클 전망이다. 또 중국 CXMT, 미국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의 기술 추격도 거세지고 있다. CXMT는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생산량의 13%를 차지했는데, 이는 마이크론의 점유율 18%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3개 기업이 분할하던 D램 시장에 균열을 가할 정도의 수준이다.
이같은 대외 변수와 경쟁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경쟁력 강화, 인재 확보, 안정적 전력 공급 등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임 차장 등은 우수한 인재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학 내 교과과정 확대, 융합연구 활성화 등을 통해 인재 육성을 확대하는 한편,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 확보와 같은 연구환경 조성과 인재유출 방지를 위한 정책노력이 뒷받침될 때만 AI 혁명 시대에 새로운 기술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