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 설립을 위한 동의율 충족(66%)에 골몰하던 리모델링 추진위로선 뜻밖에 적수를 만났다. 리모델링 추진위는 최근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위원들도 재건축을 원하고 있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어렵다”면서도 “리모델링은 대비책으로 진행하면서 인·허가 시간이 있으니 법률이 (규제 완화 쪽으로) 제정되면 재건축으로 방향을 돌려 진행해도 시간이 단축된다”는 소식지를 조합원에게 보냈다.
노후 아파트들이 고민에 빠졌다. 리모델링을 선택해 사업 속도를 당길 건지 재건축을 선택해 사업 규모를 키울지를 두고서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런 고민을 하는 단지는 더 늘고 있다.
◇재건축 규제에 물 만난 리모델링 조합...1년 만에 조합 두 배
2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리모델링 조합 설립까지 마친 아파트 단지는 3월까지 전국에서 119곳이다. 지난해 같은 달(61곳)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조합 수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추진위원회 단계까지 더하면 리모델링 추진 단지는 더욱 늘어난다.
이처럼 리모델링 시장이 커진 데는 문재인 정부가 펴 온 재건축 규제 ‘덕’이 크다. 재건축 추진에 필요한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하고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재건축으로 상승한 집값 일부를 재건축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부활시키면서 재건축은 시작하기도 사업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워졌다.
자연스레 리모델링이 대체재로 떠올랐다. 안전진단에서 D나 E등급을 받아야 승인받을 수 있는 재건축과 달리 리모델링은 안전진단 B등급을 맞아도 추진할 수 있다. 리모델링은 노후도 기준도 준공 후 15년으로 재건축(준공 후 30년)보다 짧다. 재건축 부담금은 안 내는 만큼 사업성 부담도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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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바뀐 건 지난 대선에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공약한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다. 윤 당선인은 안전진단 기준 완화, 재건축 초과 이익 환수제·분양가 규제 완화 등을 공약했다. 공약대로면 재건축을 시작하기 더 쉬워질 뿐 아니라 사업성도 지금보다 좋아진다. 재건축보다 사업 규모나 주거환경 개선효과가 작은 대신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리모델링 장점이 희석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 곳곳에서 재건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다. 이미 리모델링 조합까지 설립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에서 재건축을 주장하는 측에서 ‘리모델링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강변3단지에선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를 해체하고 재건축을 처음부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1기 신도시 단지 중 일부에선 안전진단 등급에 따라 B~C등급이 나오면 리모델링으로, D~E등급이 나오면 재건축으로 추진하자는 절충안도 나온다.
◇규제 완화 현실화는 아직 미지수
다만 공약대로 재건축이 꽃길을 걸을지는 미지수다. 당장 새 정부 안에서도 규제 완화 속도 조절론이 나온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아직 시장 과열 여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시 가격이 불안해지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집값 자극이 없도록 시장 상황을 면밀히 고려해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여기에 지분이 낮거나 기존 용적률이 높은 단지는 여전히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이 더 유리하다. 리모델링은 법정 상한 용적률에 상관없이 가구당 전용면적을 기존보다 40%까지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위원회 연구위원은 “리모델링이 재건축에 비해 비용이 저렴하지 않기 때문에 규제를 풀어준다면 사업성이 나오는 단지는 적극적으로 재건축을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사업성이 애매한 단지에선 리모델링 수요가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