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발표된 방안은 대우조선해양(042660), 현대중공업(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등 이른바 조선 ‘빅3 체제’를 유지하되 각 사별로 일부 시설·인원을 감축하는 게 골자다. 대형 컨테이너선, LNG·LPG선 같은 대형·고급상선 등 경쟁력 있는 부문에 집중 투자하는 방안도 담겼다. 11조원 규모, 250척 이상의 공공선박을 시급히 발주해 당장 급한 ‘수주절벽’ 위기를 대응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적자 전망에도 ‘빅3 유지’..주형환·임종룡 ‘이견’
이 같은 방안은 각사들이 밝혀온 자구계획이나 업계 안팎에서 예상됐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업 부실의 원인인 해양플랜트 사업의 경우 “적자지속 분야로 향후에도 추가적인 손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해놓고도 철수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수주량이 87%나 감소했고 공급능력 감축 수준(2011~2015년)도 중국·일본의 71~78% 수준이라고 진단하고도 ‘빅3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1년 전 구조조정 논의에 착수할 당시 정부 모습과는 상반된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조선·철강·석유화학·건설·해운업 구조조정 관련 범정부 협의체를 가동했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새로운 트렌드에 맞추지 못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주력산업을 고도화해야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며 상반기 중으로 사업재편 관련 보고서를 마련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업계·지자체 등 이견이 난무한 가운데 조선업 구조조정은 늦어졌다. 특히 맥킨지 보고서가 나오자 부처 간 신경전이 거세졌다. 맥킨지가 지난 8월 산업은행과 빅3 조선사에 전달한 컨설팅 초안에는 ‘독자 생존 가능성이 낮은 대우조선을 매각하거나 분할해 빅3 체제를 빅2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실업난, 국책은행 부실 등을 우려해 대우조선해양을 당장 정리하는데 부담을 느낀 금융위와 산업 구조조정 주무부처인 산업부가 부딪혔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이 보고서는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용도”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주형환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맥킨지가) 충분히 우리 조선산업 전체 생태계를 봤다”며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참고자료”라고 강조했다. 이러는 사이에 유일호 부총리는 “31일까지 발표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부처들은 논의 내용을 일체 비공개로 한 채 ‘빅3 체제 유지’ 보도에 “확정된 바 없다”는 해명만 되풀이했다.
◇“차기 정권으로 폭탄 떠넘겨”
이 결과 ‘빅2 개편’ 내용은 31일 정부 발표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대우조선 민영화” 방침을 밝히면서도 시점을 특정하지 못했다. “한 번도 대우조선에 대해 ‘2강으로 가자’는 쪽으로 얘기한 적 없다(정만기 산업부 1차관)”고 밝힐 정도로 신중론으로 기울었다. 도경환 산업부 산업기반실장은 혈세투입 논란에 대해 “4조2000억원을 지원한 것은 정리할 때 얻는 수익과 회생했을 때 얻는 수익을 비교해서 (지원하기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로 다음 정부가 조선업 난제를 떠안게 될 전망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동안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기업을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시간만 끌다가 결국은 더 큰 부실로 돌아오는 문제가 반복됐다”며 “이는 정부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며 관치를 통해 구조조정을 주도함으로써 시장의 자율 기능이 전혀 발휘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조선업 국회의원 모임(김경수·김종훈·노회찬·박지원·이용득·채이배)은 “(정부가) 구조조정 이해관계자들에게 혼란과 신뢰의 위기를 줬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차기 정권으로 떠넘겨 그야말로 폭탄 돌리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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