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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깃집을 창업한 백모(33)씨는 최근 가게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 준비 끝에 창업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백씨는 매출이 크게 줄었지만 임대료는 그대로였고,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자금은 점점 바닥을 보이자 사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사업주들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지난 2월 이후 일부 지자체에서는 임대인들에게 임대료를 감면하면 세금 혜택을 주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상 이러한 대책은 강제할 수는 없는 사항이라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이 잇따랐다. 거기다가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임대인의 선의만으로는 자영업자들의 임대료 부담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 중소형 학원을 운영하는 김모(52)씨는 “학원은 올해 세 번이나 강제로 휴원을 해야 했는데 임대료 감면이나 지원금을 받지 못한 곳들이 많다”며 “집합금지된 기간동안 임대료를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에서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김충진(60)씨도 “상권이 상업지역에 있어서 다른 곳들에 비해 임대료가 더 비싸 타격이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임대료와 관리비는 꼬박꼬박 나가는데 영업은 하지 못한 지 오래”라며 “나라에서 문을 닫으라면 닫아야 되는데 임대료라도 깎아주는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첫 6개월간 감면을 받았다가 이제는 절대 못해준다고 해서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간신히 받은 거고 5%도 감면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정부가 제대로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오호석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상임대표는 “현재로서는 자영업자들이 임대료 감면을 요구해도 90% 이상 거절당하는 현실”이라며 “(다만)임대인들이 자신들도 부채 때문에 힘들다며 임대료 깎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데 정부에서 아예 임대료를 멈추는 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코로나19 재 확산으로 방역당국 못지않게 괴로운 이들은 정부의 집합금지 및 영업제한조치로 폐업위기에 내몰린 중소상인들과 그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라며 “중소상인들의 고정비용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가임대료 문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코로나19 확산세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방역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대다수 국민과 중소상인, 여기에 고용된 노동자에게만 부담시키고 정부와 상가임대인, 금융권 등은 수수방관하고 있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임대료 멈춤법’에 자영업자 반색…“임대인에게 가혹” 의견도
임대료 부담과 관련된 문제가 커지자 정부와 여당은 임대료 부담 완화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당은 소상공인들의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이른바 ‘임대료 멈춤법’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에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집합금지가 된 업종에 대해 임대인이 차임(임차물 사용의 대가)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집합제한 업종에 대해서는 차임의 2분의 1 이상을 청구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자영업자들은 법안 발의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 송파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박모(61)씨는 “다른 지자체는 착한 임대료 정책을 했는데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그동안 피해가 막대했다”며 “법이 마련되면 그나마 임대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할 것”이라고 반색했다.
김충진씨는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발의가 돼서 다행”이라면서도 “발의만 되고 (2.5단계 기간인) 28일 이후에 통과되면 소용이 없는 게 아니냐. 이전 집합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번 유흥업소 집합금지(2단계)가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는 소급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해당 법안이 임대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관계자는 “상가 같은 경우 대부분 30% 정도만 자기 돈이고 나머지는 대출인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우에 임대료가 나오지 않으면 임대인들이 이자를 낼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임대인들도 세금이나 대출이자 등 들어가는 게 많다보니 마냥 순수하게 감면해주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이자를 유예해준다고 해도 어차피 이자는 나가야 되는 돈인데 시장기능에 맡기지 않고 (법안을) 무조건 입법화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