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탓 잠못드는 현대차‥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장순원 기자I 2013.11.28 17:18:59

엔고 반사익 누렸던 현대차 엔저에는 취약
日 공세 대폭 강화‥현대차 대응책 마련 착수

[이데일리 장순원 김형욱 기자] 1. 현대자동차 임원 A씨는 거래처와 약속 때문에 이른 새벽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출발 직전 혹시나 싶어 컴퓨터를 켰다가 한 통의 메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불과 십 여분 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메일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엔저(円低) 장기화가 걱정된다. 사업부별로 대비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심하던 A씨는 평소 생각해뒀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메일을 보낸 뒤 출장길에 올랐다.

현대차(005380)가 엔저의 파고가 다시 거세지면서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들이 엔저를 등에 업고 현대차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서다. 현대차 내부에서는 엔저로 촉발된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다. 정 부회장이 임원진에 직접 이메일을 보내 대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엔저를 바탕으로 일본 자동차업체가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현대차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걱정이 깔린 것이다.

출처:한국은행
◇ 정의선 부회장 특명 왜 나왔나

전 세계 시장에서 일본 차와 경쟁하는 현대차는 ‘원고’보다 ‘엔저’가 더 위협적이다. 현대차는 ‘원고’에 대비해 이미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약 60%, 해외 시장 판매량의 약 70%를 현지에서 생산하는 등 환율 리스크를 최적화해뒀다. 그러나 ‘엔저’, 즉 경쟁사의 경쟁력 강화는 직접 대응할 방법이 없다.

최근 외환시장 분위기는 현대차 측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엔화 값은 가파르게 낮아지며 100엔 당 1040원까지 떨어졌다. 원-원 환율의 종합적인 가치를 보여주는 실효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2008년 가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처음으로 역전된 상황이다.

이는 곧 도요타·혼다·닛산을 포함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 도요타는 지난 2008년부터 이어진 엔고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연이은 악재로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지난해 말 시작된 ‘엔저’를 등에 업고 올해는 6년 만에 가장 많은 약 23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는 지금까지 일본업체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려왔다. 이제 이런 반사이익을 더이상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현대차의 올 1~10월 미국 자동차 판매는 60만177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소폭 늘어나는데 그쳤다. 지난해 4.9%이던 점유율도 올 10월에는 4.4%까지 낮아졌다.

◇ 공세 강화하는 日‥대응책 마련 착수한 현대차

미국 오토모티브뉴스. 일본 주요 3개 브랜드는 판매 확대 추세인 반면 현대·기아차는 소폭 감소세다.
더욱이 일본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중국 등 신흥 시장에서도 공장을 신설하고 전략 모델을 내놓는 등 공세를 퍼붓고 있다. 지금까지는 현대·기아차가 일본 시장을 잠식했다면 이제는 일본 차가 현대·기아차의 주요 시장을 넘보게 된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는 최근 ‘2014년 경영환경 전망’ 리포트에서 “엔저가 이어지면서 일본 차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의 경쟁은 이전보다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회장의 지시가 떨어진 뒤 각 부문 임원들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해외법인은 일본 경쟁사와의 일전에 대비해 판매·마케팅 전략 재점검에 나섰다. 연구개발 부문과 판매·마케팅 부문에서도 내년 중 전 세계에 출시하는 2세대 신형 제네시스와 10세대 신형 쏘나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만전을 기한다는 계획이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제네시스·쏘나타 새 모델을 앞세워 해외시장을 공략할 계획이지만, 더 이상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만큼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자칫 인사시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엔저 대응에 실기할 수 있다는 걱정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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