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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비둘기(통화완화 선호)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7~8%대의 물가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내 비둘기로 평가되는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마저 강한 긴축을 시사했는데, 한국은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중 유일한 비둘기로 평가되는 주상영 위원이 물가 상승 우려에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했다. 캐나다, 뉴질랜드 등 주요국이 정책금리를 0.5%포인트씩 인상하는 마당에 한은도 총재가 없다고 금리 인상을 망설일 이유가 사라졌다. 지금은 비둘기 할아버지가 오더라도 물가에 고삐를 쥘 때라는 것이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앞으론 성장 하방위험이 숙제에 추가될 전망이다.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후보자 앞엔 윤석열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까지 놓여 있다. 매파(긴축 선호)로 똘똘 뭉친 금통위원들 간에도 의견 균열이 예상된다.
◇ ‘물가 올리고 성장률 낮출 것’…금리는 더 올린다
14일 금통위 회의를 주재한 주상영 의장 직무 대행위원이 기준금리를 만장일치로 인상한 후 기자회견을 통해 제시한 메시지는 ‘물가 상승세 높다. 고로, 금리도 추가 인상된다. 그러나 어디까지일지는 모른다’로 요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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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을 통해 물가 상승세를 잡아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성장세를 꺾을지는 아직은 애매하다는 판단이다. 주 위원은 “물가는 연간 4%나 그에 근접한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면서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원자재 가격을 상승시켜 생산 비용을 높이고 공급망 차질도 심화시키지만 1분기 지표엔 이런 영향이 예상했던 것만큼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은 2월 전망했던 성장률 3%를 하향 조정하고 물가는 3.1%보다 크게 상향 조정할 것임을 밝혔다. 성장률은 설비·건설투자, 민간소비 둔화로 2% 중후반대로 하향 조정될 수 있는데 이 정도의 성장세라면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물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 것 외에도 근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모두 2.9%로 각각 12년 9개월, 7년 11개월 래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로 훌쩍 높아진 상황에선 원화 약세가 수입물가를 올려 물가를 더 높일 가능성도 커졌다.
한은의 금리 인상에 처음으로 동조한 주 위원은 “개인적으로 올 초까지만 해도 연말 기준금리 수준을 1~1.25%로 생각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로 물가 상승 압력이 가속화되고 근원물가도 3% 수준을 상당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여 금리 인상을 하는 게 맞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 인상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이날 배포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는 “앞으로도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적절히 조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금리 어디까지 올릴지는 제각각…“중립금리 이상은 아냐”
이제 관심은 한은이 과연 얼마나 금리를 올릴 수 있을 지로 모아진다. 일단 주 위원은 금리를 올리더라도 중립금리 이상으론 올리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립금리는 물가 상승이나 하락 압력 없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는 금리 수준을 말하는데 추정 방법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한은은 중립금리가 최소한 2%는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미국은 완전 고용에 가까운 노동시장 속에 물가 상승 압력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중립금리 이상으로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중립금리 이상 수준으로 올려야 할 정도의 한계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금리 결정을 둘러싼 헤게모니는 더 복잡해졌다. 금리 결정에 있어 성장 하방위험이 주요 과제로 등장할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우리 수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중국 성장 둔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유럽 경기 둔화 가능성이 성장 우려를 키우고 있다. 주 위원은 “이날 결정은 물가 상방 위험에 보다 중점을 둔 것이지만 앞으론 물가만이 아니라 성장 하방위험도 종합적으로 더 균형 있게 고려할 생각”이라며 “금통위원들의 (최종 기준금리 수준)도 좀 더 다양해졌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급증, 물가안정만 보고 갔던 매파 위원들 사이에서도 앞으론 성장을 의식해 의견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분위기에 전문가들의 금리 상단도 제각각 갈렸다. 1.75%부터 2.75%까지로 범위가 확대됐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금통위원 간 전망 레인지가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은 금통위 테이블에 경기 여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며 “3분기 한 차례 추가 인상 후(1.75%) 동결 기조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금리가 추가로 7월, 10월 인상돼 연말 2%로 높아질 것”이라면서도 “내년 성장에 방점이 찍힌다면 내년엔 추가 인상이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을 재빨리 다잡기 위해 5월 연속 인상 가능성도 거론됐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말에는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이 감소할 것”이라며 “금리를 올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올려야 해 5월 인상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JP모건은 내년 말 예상했던 기준금리 2.25%가 내년 1분기에 조기 달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계부채에 대한 이창용 후보자의 매파 발언과 윤석열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기조도 고려해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작년처럼 빚투(빚을 내 투자)가 금리 인상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차기 정부에서 대출 규제 완화를 시사하며 시중은행들도 가산금리를 인하하고 있다”며 “가계대출이 재차 증가할 경우 금융불균형을 강조하는 시각이 확대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5월 금리 인상 전망이 높아지면 기준금리 최종 상단이 2.25~2.50%에서 2.75%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는 이달 초 기자들과 만나 “금리로 가계대출을 연착륙하겠다”고 밝혔고 윤 정부가 추진하는 주택담보대출(LTV) 하향 조정에 대해서도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