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론가 박광민(한국어문교육연구회 연구위원)씨는 ‘미술 세계’ 11월호에 발표한 논문 ‘구본웅과 이상, 그리고 목이 긴 여인 초상’에서 “시인 이상이 1933~35년 2년동안 운영했던 제비 다방의 위치는 ‘서울 종로구 종로1가 33-1’이며, 현재 주상 복합 건물 그랑서울이 들어서 있다”고 밝혔다.
시인 이상은 23세 때 21세의 금홍이라는 기생에 빠져 지금의 그랑서울 자리에 ‘제비 다방’을 개업하고 금홍을 마담으로 앉히고 이 다방을 운영했다. 건축가였던 그는 제비 다방의 공간을 직접 설계했다. 거리와 접한 면을 전면 유리로 투명하게 보이게 했고, 내부의 모든 벽면은 흰색으로 디자인했다. 현대의 커피 전문점처럼 안과 밖이 보이는 구조였다.
이처럼 파격적인 외양을 가진 제비 다방에는 당대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 그리고 기자와 유학파 인텔리들이 몰려 들었다. 이 다방의 단골이던 유명 인사로는 소설가 김유정, 박태원, 화가 구본웅이 있다. 이상은 경영난으로 이 다방을 개점 2년째인 1935년 폐업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37년 이상은 불온 사상 혐의로 일본 도쿄에서 체포됐고, 병보석으로 풀려 났지만 그해 세상을 떠났다. 제비 다방은 그간 서울 청진동 어딘가에 있었다고만 알려져 왔다.
제비 다방 자리에 세워진 그랑서울은 지상 24층, 지하 7층, 연면적 연면적 17만 5536㎡의 초현대식 건물로 2013년 12월 준공돼 각종 업무 시설과 근린 생활 시설이 들어서 있다. 서울 지하철 종각역 1번 출구 앞이다.
박씨는 화가 구본웅(1906~1953)의 미공개작 ‘목이 긴 여인 초상’(개인 소장)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구본웅과 이상은 신명소학교 동기 동창이다. 구본웅이 네 살 위지만 몸이 약해 학교를 다니다말다 하면서 이상과 같이 졸업했다. 구본웅은 초기 서양화단의 대표적인 야수파 작가로 ‘한국의 로트렉’으로 불린다.
이상과 동거한 금홍은 그의 소설 ‘날개’ 에 ‘연심’이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또 다른 소설 ‘봉별기’에는 금홍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금홍이는 겨우 스물한 살인데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았다. 서른한 살 먹은 사람보다도 나은 금홍이가 내 눈에는 열일곱 살 먹은 소녀로만 보이고 금홍이 눈에 마흔 살 먹은 사람으로 보인 나는 기실 스물세 살이요, 게다가 주책이 좀 없어서 똑 여남은 살 먹은 아이 같다.’(봉별기)
금홍은 영화 ‘금홍아 금홍아’(감독 김유진·1995)의 타이틀롤이기도 하다. 이지은이 금홍, 김갑수가 이상, 김수철이 구본웅을 연기했다.
이상의 동생 김옥희씨는 제비 다방과 금홍의 존재를 전했다. “제가 제비 다방에 가면 큰 오빠는 홀에서 친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금홍이는 주로 뒷방에서 자고 있곤 했어요. 저는 주로 큰오빠의 빨랫감만 받아서 곧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별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굉장히 살결이 곱고 예쁜 여자였어요.” (‘레이디경향’ 1985년 11월호)
제비 다방의 소재지를 지목하는 구본웅의 막내 아들 구순모(71)씨의 과거 증언도 박씨는 찾아냈다. “(맏형 구환모는) 아버지를 따라 몇 차례 같은 다방에 간 적이 있었다고 하면서 바로 여기라고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말한 적이 있다. 비록 그 찻집의 이름은 기억할 수 없지만 이상이 운영하던 곳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그래서 형과 함께 그곳의 지번을 확인해 본 결과 그곳의 주소가 ‘종로1가 33번지’였다.”
1935년 여름 금홍이 떠나고, 4년이나 쫓아다닌 권순옥마저 그해 8월 29일 결혼하자 이상은 9월 제비다방을 폐업한 뒤 변동림이라는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다. 변동림은 1944년 5월1일 수화(樹話) 김환기와 재혼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했다. 박씨는 새로 발견한 구본웅 작 ‘목이 긴 여인 초상’(49.5×64.7㎝)의 주인공이 금홍이라고 짚었다. “구본웅이 이상을 모델로 그린 ‘우인초상’(1935)과 대비하면 작품 크기, 짙은 푸른색 바탕에 컬러 색채를 덧칠해 그린 화풍, 캔버스와 물감의 연대 등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우인초상’의 짝으로 그린 금홍 초상이 아닐까 한다”는 것이다. 제비 다방의 위치가 확인되면서 그 자리에 기념물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시인 이상(왼쪽)과 그의 여인 금홍. /사진 제공=문화평론가 박광민. 뉴시스
시인 이상의 ‘제비 다방’ 자리에 세워진 주상복합건물 그랑서울. /사진 제공=구글
그랑서울의 위치(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