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은 전쟁 못보내"…러→아르헨티나 원정출산 급증

방성훈 기자I 2023.02.13 18:18:36

최근 수개월간 5000명 이상 아르헨티나서 원정출산
푸틴 강제 징집후 급증…무비자 입국 가능해 몰려
"임신부 대부분이 출산 임박 여성…애만 낳고 떠나"
관련 브로커·여행상품 성행…문서 위조 등 범죄도 늘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 임신부들이 대거 아르헨티나로 원정 출산에 나서고 있다. 자녀가 아르헨티나 국적을 취득하면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다음달인 2022년 3월 모스크바 도모데도보 국제공항에 해외로 출국하려는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몰렸다. (사진=AFP)


BBC방송은 12일(현지시간) “최근 수개월 동안 5000명이 넘는 러시아 임신부들이 아르헨티나를 방문했다”며 “대부분이 출산이 임박한, 임신 마지막 주에 해당하는 여성들이었다”고 보도했다. 플로렌시아 카리냐노 아르헨티나 이민국장은 올해 들어 입국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지난 목요일(9일) 하나의 항공편으로만 33명의 임신부가 입국했다. 3명은 가짜 관광객 혐의로 구금됐다”고 전했다.

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예비군 30만명을 징집하는 동원령을 발동한 뒤 러시아 임신부들의 해외 원정 출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녀만큼은 전쟁에 끌려가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유독 아르헨티나를 찾는 이유는 방문시 별도의 비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악한 러시아 의료시스템 대비 고품질인 아르헨티나의 의료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는 점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당초 러시아인들이 가장 손쉽게 방문할 수 있는 해외 지역은 유럽 국가들이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대(對)러시아 제재 일환으로 지난해 9월 유럽연합(EU)과 러시아 간 비자 촉진 협정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러시아인이 EU 회원국을 방문하려면 추가 서류 등 절차가 복잡해졌다. 처리 시간도 대폭 늘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국가들은 러시아인 대상 관광 비자 발급을 아예 중단했다.

카리냐노 국장은 “문제는 러시아 임신부들이 자녀를 낳고 그들을 아르헨티나인을 등록만 하고 떠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러시아인 부모들이 자녀의 아르헨티나 여권을 해외 방문 등에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르헨티나 여권을 소지하면 171개국에 비자 없이 입국이 가능하다. 이는 러시아(87개국)의 두 배 수준이다. 또 아르헨티나 자녀가 있으면 부모의 시민권 취득 절차도 빨라진다.

이에 아르헨티나에서는 원정 출산을 중개해주는 브로커는 물론 관련 문서 위조 등의 범죄도 급증하고 있다. 그 규모만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아르헨티나 경찰은 최근 위조 문서를 제공한 불법 중개업체를 급습하기도 했다. 이 업체는 러시아인 한 명당 최대 3만 5000달러를 받고 문서 위조 등의 불법 서비스를 제공했다.

러시아에서는 아르헨티나 원정 출산 관련 여행 패키지 상품까지 등장했다. BBC는 “아르헨티나인이 운영하는 한 여행사는 원정 출산과 관련해 5000달러에서 시작하는 ‘이코노미 클래스’부터 1만 5000달러에서 시작하는 ‘퍼스트 클래스’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심지어 맞춤형 출산 계획, 공항 마중 서비스, 스페인어 수업 등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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