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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사정책연구원과 한국무죄네트워크는 4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재심폭을 넓혀라’라는 제목으로 제심제도 개혁 토론회를 열었다. 재심은 확정 판결에 중대한 오류나 하자가 있을 때 재판을 다시 청구하는 제도다.
◇ 강압적 신문 상황 등이 허위 자백 불러
조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1995년부터 2012년 8월 사이에 1심에서 유죄였다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강력범죄 사건 540건을 분석한 결과 “피고인이나 공범의 허위자백과 피해자 및 목격자의 오인 지목 진술, 피해자의 허위진술과 피해 오인진술 등이 판단 차이를 초래한 주된 요인이었다”고 밝혔다.
허위 자백으로 인한 오판의 대표적 사례는 약촌오거리 택시강도 살인사건다. 이 사건은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 약촌 오거리 부근에서 택시운전자 유모씨가 흉기에 찔린 채 본인의 택시에서 숨진 사건이다. 당시 경찰과 검찰은 최초 목격자이자 다방커피 배달원 최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은 당시 16세에 불과했던 최씨를 상대로 강압수사를 벌여 최씨로부터 택시기사 유씨와 시비가 붙어 유씨를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검찰은 최씨를 재판에 넘겼고 최씨는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고 2010년 만기출소해 재심을 통해 2013년 3월 16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 사건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조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강압적인 신문 상황에서 더 순응적이고 암시적인 방식으로 반응한다”며 “자백을 얻어내는 위한 (수사기관의) 신문 전략 사용과 조사 시간, 조사 길이도 허위자백 발생의 상황적 위험 요인”이라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부실 수사가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박미숙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일본의 주요 재심 사례를 분석한 발표를 통해 “일본의 경우 오판의 원인으로 불충분한 수사와 허위자백에 대한 의존이 지적되고 있다”며 “증인의 증언에 의존하는 것 또한 오판의 위험성을 높이는 한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 재심청구 요건 완화 필요
전문가들은 재심 제도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입법적 노력과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진국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과 프랑스의 재심제도와 시사점’ 발표를 통해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의 재심이유가 증거의 명백성과 신규성의 요건을 이중으로 요구하는 것과 달리 프랑스 재심이유는 명백성 또는 신규성 중 어느 하나만 충족하면 재심청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우리나라 형사소송법 420조는 재심 이유의 하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무죄나 면소를,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형의 면제나 원판결이 인정한 죄보다 경한 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라고 규정하고 있다.
재심 과정에서 국선변호인 조력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재심청구절차에서 국선변호인의 조력이 인정되지 않고 있다. 단지 재심절차에서 재심을 청구한 자가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경우 재판장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독일 형사소송법은 재심청구절차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자를 위한 국선변호인 조력을 규정하고 있다.
박미숙 연구위원은 “재심제도 개정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며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대 초 사법개혁 목소리가 커지면서 제도개혁의 구체적인 방향과 논의에까지 이르렀지만 오판구제라고 관점에서 사법개혁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