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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지만 부모님은 안 부를래요”…‘래커칠’ 남은 동덕여대

정윤지 기자I 2025.02.21 16:15:37

동덕여대, 2024 전기 학위수여식 개최
‘공학 전환 시위’ 넉 달 째…래커칠 흔적 곳곳에
졸업 기념 사진 안 찍고, 졸업 미룬 학생도

[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공학 전환 문제로 학교와 학생 간 극심한 갈등을 빚어온 동덕여대는 상흔이 여전한 모습이다. 새 학기를 앞두고 졸업식이 진행됐지만 래커칠 시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일부 학생들은 부모님 대신 동기들과만 조용히 졸업을 기념하기도 했다.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동덕여대 캠퍼스 100주년 기념관 앞에서 학생들이 졸업을 기념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이데일리가 21일 오전 9시쯤 찾은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동덕여대 캠퍼스에는 아스팔트 바닥과 건물 외관 할 것 없이 빨간색 래커칠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날 동덕여대는 2024 전기 학위수여식을 개최하고 졸업생들에게 학위증을 수여했다.

캠퍼스에 마련된 포토존에서 졸업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고 학교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이 늘어선 한 건물 정문에는 날달걀을 던져 흰자가 묻은 흔적이 남아 있기도 했다. 본관 맞은 편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시위 의견을 모으기 위해 벗어놓은 과잠(학교 점퍼)이 비닐에 덮여 놓여 있었다. 학생회관 앞에서 만난 한 졸업생의 친구 남모(26)씨는 “친구 졸업을 축하해주려고 왔는데 래커칠 때문에 사진 각도가 잘 안 나온다”며 이리저리 휴대전화를 움직였다.

일부 학생들은 사진을 찍지 않기도 했다. 학위증만 받고 캠퍼스를 떠나던 한 졸업생 A(25)씨는 “졸업 때 스냅촬영을 하는 게 로망이었는데 이대로는 사진이 안 예쁠 것 같다”며 “학위증만 받고 사진관에서 따로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과계열 졸업생 김모(23)씨도 “건물이나 바닥에 적힌 문구들이 부모님께서 보시기에 안 좋아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서 친구들끼리만 사진을 찍기로 했다”고 전했다.

21일 오전 2024 전기 학위수여식이 열린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 돈암수정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이날 남학생 입학 문제로 동덕여대와 비슷한 갈등을 빚은 성신여대도 2024학년도 전기 학위수여식을 개최했다.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돈암수정캠퍼스에서도 보라색 학위복을 입은 학생들이 졸업을 기념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바닥과 건물 계단 등에 각양각색의 래커로 쓰인 ‘남녀공학 반대’ ‘자주성신’ 등 문구가 남아 있었다.

교내를 둘러보던 졸업생 이모(25)씨는 “사랑하던 캠퍼스가 하필 졸업할 때 이렇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친구들도 다들 안 찍는다고 하길래 저도 캠퍼스 대신 사진관에서만 찍었다”고 말했다. 졸업을 미뤘다는 학생도 있었다. 사회과학대학 졸업유예생인 B(24)씨는 “정말 오로지 래커칠 때문에 사진을 남길 수 없으니 졸업을 미뤘다”며 “후기 학위수여식 전에는 꼭 (래커칠이) 지워질 거라고 믿고 있다”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학교 본부 측에 ‘졸업식 때만이라도 래커칠을 흰 천으로 가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11월 동덕여대와 성신여대는 각각 남녀공학 전환 문제와 국제학부 남학생 입학 문제로 학생들의 래커칠 시위를 겪었다. 동덕여대의 경우 사태가 벌어진 지 넉 달이 다 돼 가지만 피해 보상을 두고 학교 측과 학생 측 간 갈등은 좁혀지지 않는 모양새다. 학교 본부 측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 경찰은 래커칠 시위를 벌인 학생을 상대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성신여대는 학생 측에 “날씨가 따뜻해지는 대로 제거 작업을 진행하겠다”고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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