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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민의 동거동락] 역경을 이겨낸 당신에게 박수갈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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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대 기자I 2025.12.12 14:03:05
오른쪽 임현재 바이올리니스트(사진=서울국제음악콩쿠르 SNS)
[이데일리 고규대 기자] 지난 10일 ‘제2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임현재(28·美커티스 음악원)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콩쿠르는 매년 있는 콩쿠르이지만, 임현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우승은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자. 이는 바로 그가 경연 내내 휠체어에 탄 채로 연주를 했기 때문이다.

7세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던 임씨는 5년 전 한국에 귀국했다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교통사고였다. 자그마치 4년간 바이올린을 잡을 수 없었다.

그가 다시 악기를 잡은 것은 지난해 6월부터였다. 4년간의 공백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며 그는 뼈를 깎는 고통을 참아가며 다시 연습에 매진했다.

결과는 영광의 1위 트로피, 상금 5만달러(약 7300만원), 그리고 다양한 연주 기회 제공이었다.

임 씨는 필자와도 아주 작은 인연이 있다. 지난 9월 뉴욕 JFK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항공편 앞뒤로 앉았었는데, 그때 좌석 위 선반에 있는 임씨의 바이올린을 다른 승객이 함부로 옮기려는 것을 같이 제지한 적이 있다. 항공편에서 하기하면서 서로 인적사항을 공유했다.

임씨의 결선 진출 및 우승 소식을 접하고 내 일인 양 기뻤다. 나 또한 나름 역경을 이겨낸 추억이 있기 때문임이라.

서형민 피아니스트가 2021년 독일 본 베토벤 국제콩쿠르 1위 수상 발표 직후 찍은 자신의 왼손 사진(사진=서형민)
필자 또한 피아노를 못 친 적이 있었다. 2014년 경부터 발병한 손끝 염증 때문이었다. 이 원인 모를 병은 염증으로 인해 손가락 말단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손톱이 손톱바닥에서 박리되고, 심하면 손톱 밑에 좁쌀 크기 만한 고름까지 올라오게 만들었다. 극심한 압통(壓痛) 때문에 밤에 잠도 못 이룰 정도였다. 어느 신문사 인터뷰에서 나는 “손가락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런 와중에 세계 3대 콩쿠르인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덜컥 합격해버렸다. 당시 한국에 잠시 귀국해 여기저기 병원을 수소문하며 원인을 모르겠다는 의사들의 답변에 좌절하고 수년에 이르는 고통에 지쳐가던 나에게 이것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이후 1년 만에 피아노 연습을 재개했고, 그해 6월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결선까지 진출했다. 그 이후 임시방편의 치료를 하게 된 나는(그 임시방편의 치료를 지속하면 면역력이 완전히 붕괴될 수도 있었다) 더욱 악화된 손가락 상태를 갖고 그해 11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결선 무대 직후 나는 통영국제음악당 대기실 내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놓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필자의 역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인들은 내게 우스갯소리로 “네가 지금 책을 써도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이 나오겠다”라고 할 정도였다. IMF 사태로 집안이 쫄딱 망하고 나서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헤쳐왔다. 그러나 그중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건강을 잃었을 때이다. 손끝 염증은 완치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2021년 본 베토벤 국제콩쿠르를 만장일치로 우승했을 때에도 손 상태는 결코 좋지 않았다.

콩쿠르 직후 피로연에서 상기한 2016년 윤이상 국제콩쿠르에서도 나를 심사했었던 베토벤 콩쿠르 심사위원장 파벨 길릴로프(Pavel Gililov) 교수님에게만 나의 손 상태를 보여주자 이런 상태로 어떻게 그렇게 연주를 할 수 있었냐며 깜짝 놀라셨다. 건강의 소중함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일평생 깨달았던 필자이기에 임씨의 우승이 더욱 값지게 여겨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보통 미국의 액션 배우인 척 노리스(Chuck Norris)가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격언이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그의 저서 우상의 황혼(Götzen-Dämmerung·Twilight of the Idols)에 적은 구절이다. (독일어 원문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이 구절은 인간이란 역경을 이겨내면 이겨낼수록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를 견뎌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다.

우리 주변에도 온갖 역경을 겪고 이를 이겨낸 사람들이 많다. 이런 ’인간승리‘의 주역은 이따금 미디어에서도 주목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이재명 대통령도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형편에서 소년공으로 각종 폭행과 장애까지 얻어가며 주경야독하여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인간승리의 표본이다. 정치적 스탠스나 여러 이슈를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인물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인생의 모든 좋거나 나쁜 일들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끝이 있다는 의미다. 역경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서도 각각 다른 이유들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온 세상이 당신을 ’억까‘하는 듯 여겨질 때도 있을 것이고, 금전적이나 인간관계상 문제가 당신을 괴롭히고 있을 수도 있다. 거시적으로도 물가는 오르며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전 세계 경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견디고 견디다 보면 터널의 끝은 보이고 마침내 봄날은 온다.

그날까지 우리가 우리가 응원하자.
◇ 서형민 피아니스트=베토벤 국제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글로벌 활동을 하는 국내 손꼽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서형민 피아니스트는 각국을 오가면서 각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문화 및 사회와 관련된 글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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