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의료기관 앤서블 헬스(Ansible Health) 연구진이 챗GPT를 대상으로 USMLE 시험을 보게 한 결과 모든 시험에서 50% 이상의 정답률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오픈AI가 지난해 11월 선보인 챗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도록 훈련된 AI 서비스다. 챗GPT가 작성한 문서는 인간이 직접 쓴 것으로 착각될 정도로 구별이 어렵다.
9일 이데일리의 취재를 종합하면 챗GPT의 등장으로 교육계도 고민에 빠졌다. 표절·대필 등으로 이를 악용할 우려가 있어 평가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수도권의 한 국제학교에서 챗GPT를 활용, 영문 에세이 과제를 제출한 학생들이 전원 0점 처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교육계에선 학습과정에서의 AI 활용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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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는 이미 챗GPT 악용을 방지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교무처 관계자는 “챗GPT를 활용한 악용 방지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며 “(챗GPT) 활용 여부는 교수들의 몫이지만 AI를 활용한 대필·표절 등에 대한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지역 대학의 한 교수도 “현재 관련 부처에서 챗GPT 악용과 관련해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다음주 예정된 전체 교수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는 교수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올해 1학기 강의계획서에 “공부하는 과정에서 챗GPT 등 AI를 활용할 수는 있지만, AI를 활용해 생산한 답안을 자신이 쓴 것처럼 제출하면 부정 행위로 간주하겠다”는 문장을 추가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 역시 “공부하는 과정에서 챗GPT 등 AI 활용은 권고하지만 평가 과정에서는 반드시 이를 배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평가에서도 챗GPT 등 AI 기술을 활용하겠다는 교수도 있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올해부터 챗GPT를 활용한 시험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AI 신기술이 나왔는데 이를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챗GPT가 풀 수 없는 내용의 문제나 과제를 내고 학생들이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 맞다”고 했다.
◇챗GPT 활용 금지 나선 美 교육기관
해외 사례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챗GPT 등 AI 기술이 표절·대리 작성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나오자 우리와 같이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뉴욕시는 공립학교 내 와이파이 등 네트워크에서 챗GPT 접근을 차단했다. 뉴욕시는 “챗GPT로 인해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익히지 못할 수 있다”며 차단 배경을 설명했다. 워싱턴대·버몬트대의 경우 학칙을 통해 AI를 활용한 대필 등을 ‘표절’로 규정했다. 하버드대·예일대 등에서는 ‘GPT제로’ 프로그램을 활용, 챗GPT를 통해 작성한 글을 걸러낼 계획이다. GPT제로는 미 프린스턴대 재학생이 개발한 것으로 AI에 의해 작성된 글을 식별하는 프로그램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챗GPT 활용을 평가 과정에서 배제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영국의 자격시험감독기관인 오프퀄은 챗GPT를 활용해 부정행위를 한 학생에 대한 시험 자격 박탈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머신러닝학회(ICML) 역시 챗GPT 등 AI를 활용한 논문 작성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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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전문가도 챗GPT 등 AI를 활용해 작성한 답안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13일 네이처에 따르면 미 노스웨스턴대가 챗GPT를 활용한 의학 논문 50편을 연구원들에게 구분하게 하자 이 중 32%(16편)를 사람이 쓴 것으로 구분했다. 해당 분야의 연구원들조차도 AI 활용 논문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한 셈이다.
교육학자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수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을 방법도 없고 AI가 작성한 것이라고 정확히 가려내기도 어렵다”며 “결국 교수법 자체를 바꿔 학생들의 창의력·분석력 등 지적 역량을 기를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평가 시스템을 바꿔 챗GPT 등 AI를 활용하더라도 구술·토론 등을 평가하는 새로운 교수법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AI 윤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시대에 맞게 학생들에게 AI 윤리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AI를 활용해 학습하더라도 과제·시험 등 공정성이 필요한 평가에선 최소한의 규칙·윤리를 지키도록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