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부터 꼬였다
예상대로 국회는 시간에 허덕였다. 33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여야는 공청회, 종합정책질의, 예산조정소위원회 등의 절차를 밟으며 밤낮으로 심사했다. 이 과정에서 보류되는 안건만 따로 심사하는 ‘소소위(小小委)’라는 비공식 회의체가 운영되기도 했다. 공식 회의체와 다르게 비공식 회의체는 회의록도 작성되지 않고 언론 참관도 불가능하다. 회의에 들어가는 것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과 여야 의원 등 5명 뿐이다.
관례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되는 증액심사는 올해도 그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은 채 골방에서 이뤄졌다. 여야는 물론 지역구마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증액심사는 주고받기식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예산심사 투명화가 또 한 번 과제로 떠올랐다.
◇ 선진화법 두고 아전인수식 해석
12년만에 새해 예산안이 법정기한내 처리된 ‘일등공신’도 국회법이었지만, 처리과정에서 가장 큰 변수 역시 국회법이었다. 여당은 처음부터 ‘국회가 11월 30일까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할 경우 그 다음날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는 국회법 제 85조 3에 초점을 맞춰 12월 2일 통과를 주장했다. 그러나 야당은 ‘다만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것에 주목하며 “어떤 경우에도 여야 합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누리과정 국고지원 예산 규모를 놓고 야당이 반발하며 예결위를 포함한 전 상임위원회 보이콧을 하면서다. 야당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의결이 불가능하지만 여당은 느긋했다. 11월 30일 자정이 되면 예결위는 자동으로 심사권한을 박탈되고, 지금까지 심사한 내용은 소속 의원 50명을 모아 수정동의안의 형태로 제출되기 때문이다. 결국 야당은 하루 만에 이춘석 예결위 야당 간사의 결단으로 예결심사에 들어갔다.
여당 역시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국회법을 해석하려다가 번번이 제동이 걸렸다. 여당은 새누리당이 신용카드 소득공제 일몰 연장(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 부수법안으로 지정되지 않은 세법들도 동시 처리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수정동의안은 본회의에 상정된 의안과 직접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국회법 제 95조 5항에 제동이 걸렸다. 결국 여야는 원내대표간 막판 협상을 거듭한 끝에야 기재위에서 잠정합의된 세법도 수정안의 형태로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똑같은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객관적인 기준이 확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법 해석을 둘러싼 여야의 밀고당기기 속에서 정작 예산안을 심사해야 할 시간과 노력이 낭비되기 때문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1일 기자와 만나 “(국회선진화법을) 앞으로 보완을 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