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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으로 균열‥흔들리는 美 ‘화웨이 죽이기’

방성훈 기자I 2019.06.10 18:13:50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대행, 펜스 부통령·의원들에 서한
“美기업 대응 시간 부족…발효 4년후로 늦춰야"
WSJ “화웨이 거래 즉각 중단 어려운 美현실 반영”
사우디·브라질 "화웨이 배제않겠다"…美제재 동참 거부
미중 무역전쟁에도 영향 끼칠 지 주목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화웨이 봉쇄 전선에 안팎으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 내부에서조차 “준비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제재 시한을 늦춰달라는 요구가 나왔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국가들이 잇따르고 있다. 화웨이를 압박해 미중 무역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는 것.

특히 미국과 중국 모두 갈등 국면을 계속 끌고 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무역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명분이 쌓이고 있는 만큼 좌초 상태인 미중 무역협상이 새 국면을 맞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백악관 내부서 “화웨이 제재 늦춰달라”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대행은 지난 4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및 9명의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2020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에 포함된 화웨이 제재 이행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NDAA에는 미국 연방정부·기관에 납품하는 기업이나 정부 보조금을 받는 업체가 화웨이· ZTE(중싱통신) 등 중국 IT기업들 또는 실질적으로 이들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들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키지 않을 경우 보조금 지급이 중단된다.

보우트 대행은 “국가안보를 위해 (화웨이 등 중국 IT기업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연방정부에 납품하는 기업 수가 급격하게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 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불이익을 받는 다양한 분야의 잠재적 이해관계자들이 우려를 호소하고 있다. 보조금에 의존하는 농촌 지역 기업들에게도 큰 피해가 예상된다”면서 “기업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들의 발효 시기를 2년 후가 아닌 4년 후로 늦추자”고 제안했다. 정부 보조금 지원을 받으면서 화웨이 장비를 쓰는 중소 기업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더 주자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단기간에 화웨이와의 거래를 중단하기 어려운 미국 기업들의 현실을 보여준다”면서 “NDAA가 지연되면 화웨이에 대한 제재도 유예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우디·브라질 美 화웨이 제재 동참 거부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한 동맹국들의 참여도 신통치 않다.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된 이후 동맹국들을 향한 미국의 화웨이 제재 동참 요구도 더욱 거세졌지만, 호주, 일본, 대만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미적지근한 모습이다. 영국은 통신망 구축 과정에서 핵심 부품에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완전한 배제에선 한 발 물러섰다. 프랑스와 독일도 화웨이를 무조건 배제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국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날 화웨이 제재 불참을 선언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사우디의 압둘라 빈 아메르 알-사와하 통신정보기술장관은 8~9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20개국(G20) 무역·디지털 경제장관 회의에서 5G 통신망 구축 과정에서 화웨이 제품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방문한 러시아에 이어, 브라질 등 중남미 국가들도 화웨이 장비를 계속 쓰겠다는 입장이다. 아미우통 모랑 브라질 부통령은 이날 5G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화웨이 장비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도 미국의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 요청에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트럼프-시진핑 직접 협상 활로 모색

현재까지 미국과 중국은 서로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상무부와 똑같이 신뢰할 수 없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희토류 수출 금지를 검토하는 등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28~29일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추가 관세 부과 문제를 결정할 것”이라며 “진전이 없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꺼이(perfectly happy)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생각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우회로를 고민할 가능성도 있다. “여러 부작용을 고려해 일정 수준은 양보했다”는 명분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마침 시 주석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르면서 “미중 관계가 붕괴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이코노미스트 출신의 투자전략 분석가 마이클 이바노비치는 “시 주석이 지난 주말 러시아에서 기존과 다른 태도를 보였다”면서 “이달말 G20 회동에 앞서 환영할 만한 변화”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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