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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제 피해 ‘패밀리 오피스’ 확산..2년간 38% 급증
외신 등에 따르면 월가를 뒤흔든 아케고스 사태가 벌어진 가장 큰 이유로 공시의무가 없었다는 점이 꼽힌다.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1억달러 넘는 자산을 관리하는 헤지펀드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등록해야 하고 거래 기록도 당국에 제출해야 하지만 패밀리 오피스는 이런 의무가 없어서다.
이 같은 이유로 패밀리 오피스의 인기는 높아졌다. 지난 10년간 헤지펀드 업계의 스타들이 주로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을 꾀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빌 황 역시 그 중 하나다. 지난 2012년 중국은행 등 내부정보를 이용해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4400만달러를 배상하게 되자 그는 자신이 이끌던 타이거아시아펀드를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했다.
규제 칼날을 피해 패밀리 오피스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지난 2019년 영국 패밀리 오피스 분석업체 캠든웰스 조사에 따르면 패밀리 오피스는 2년간 38% 늘었으며 총 자산은 5조9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언스트앤영(EY) 역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을 합친 것보다 글로벌 패밀리 오피스 자본이 더 많다는 추정을 내놓기도 했다.
공시 의무가 있었더라면 아케고스 사태로 인한 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영리 단체인 헬시 마켓의 타일러 겔라시 상무 이사는 마켓워치에 “만약 SEC가 대형 헤지펀드와 다른 기관 투자자들이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큰 포지션을 취한 데 대해 공시 의무를 요구하는 내용의 규칙을 개정했더라면 이런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허점을 꼬집었다.
월가 규제강화를 옹호하는 시민단체 ‘베터마켓’의 데니스 켈러 대표도 “시장은 (아케고스)의 포지션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팔릴지, 누가 소유했는지, 어떤 레버리지인지 전혀 몰랐다”며 “그림자 금융 시스템이 여전히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의회·연준 등 규제압박 나설 가능성
‘월가 저승사자’ 엘리자베스 워런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도 곧바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광범위하게 규제를 피한 헤지펀드, 불투명한 파생상품 거래, 개인 간 암거래, 높은 레버리지, 미 SEC 권한 밖에서 꿈틀대는 트레이더 등 아케고스 사태는 위험한 시장 상황의 속성을 모두 보여준다”며 금융 규제 당국이 은행들에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하고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민주당에 헤지펀드에 비판적인 의원이 다수 포진한 만큼, 규제 당국이 움직이도록 압박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당국도 규제 강화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31일(현지시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SEC 등 규제감독 당국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를 연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첫 회의다. 아케고스 사태 이전부터 예정된 일정이지만 헤지펀드 감시 감독도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투자은행들의 리스크 관리능력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JP모건은 아케고스 사태에서 대처가 늦었던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의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축소’로 한 단계 내렸다. 한 고객사와의 거래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회사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무라와 마찬가지로 아케고스에 돈을 빌려준 골드만삭스는 신속하게 관련 주식을 매도해 손실을 줄였다는 평가다. 2008년 9월 리만브라더스 파산 때에도 골드만삭스는 국부펀드나 부유층 재단 등 유력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블록딜을 하는 식으로 위기에서 탈출한 바 있다. 큰손 고객 확보 측면에서 골드만삭스에 밀렸기 때문에 노무라가 이번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