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침묵의 거인'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생전 어록에 겸손 고스란히

남궁민관 기자I 2019.03.04 14:19:29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1995년 OB베어스(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석했다.두산그룹 제공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한 가운데, 고인과 관련된 일화 및 어록에 재계 이목이 쏠린다. 평소 과묵한 성품으로 재계에서도 ‘침묵의 거인’으로도 유명한 그이지만, 알려진 몇몇 일화와 어록은 사람을 품는 넉넉한 인품과 겸손한 삶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먼저 박 명예회장은 재계 내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을 가졌다. 그는 생전 말을 많이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된다”며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만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한다”고 밝혔다. 말에 대해 신중한 고인의 태도가 삶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사람을 귀히 여기는 인품도 몇몇 어록에 드러나있다. 고인은 언제가 면접 시험장에서 입사지원자에게 부친의 직업을 물었다. ‘목수’라는 답변을 들은 그는 “고생하신 분이니 잘해드리라”라며 등을 두드려주었고, 그 지원자는 합격 이후 그때의 기억을 품고 현재 중견 간부로 성장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 하루는 박 명예회장이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한 날이 있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 명예회장이 주차장에서 직접 주차를 하는 모습을 본 한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난리가 났지만, 오히려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해당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함께 일 한 사람으로, 박 명예회장과도 40여년을 함께 일 했다.

그의 겸손하고 소박한 삶의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있기도 하다. 박 명예회장은 유치원 시절 집안이 큰 포목상을 하는 데도 무명옷 색이 바랠 대까지 입고,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고 다녔다는 후문.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를 다닐 때는 끼니를 제대로 못 잇는 급우들을 위해 모친이 챙긴 도시락을 한 가방씩 들고 등교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외에도 박 명예회장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2군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 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