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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또 한 번의 핵위기가 닥칠까. 고립주의 노선을 고수하다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거 미국이 자처했던 `세계 경찰` 코스프레에 나서며 국면 전환을 노린 탓에 한반도에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불똥이 튀고 말았다.
취임 100일도 채 안된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은 반(反)이민 행정명령 제동, 러시아와의 커넥션 의혹,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조치) 폐기 좌초 등 국정운영을 둘러싼 혼선을 초래했고 그 자신은 역대 유례없는 지지율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일본 정도를 제외하고는 전통적 우방들과의 관계도 껄끄럽기 그지 없다. 결국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외부의 적(敵)을 타깃팅해 내부를 결집시키는 전략을 꺼내 들었다.
작심한 그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첫 표적은 시리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화학무기를 사용한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에 “무고한 어린 아이들의 참혹한 죽음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시리아는 넘지 말아야할 선(=레드라인)을 넘었다”면서 군사대응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리곤 불과 63시간 만에 시리아 공습을 단행했고 공공연히 아사드 대통령 축출을 외치며 기존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 버렸다. 얼핏 보면 기분 내키는대로 외교정책을 뒤집은 것처럼 보이지만 전세계 시선이 집중된 미·중 정상회담 도중 공격을 단행했다는 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작전이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일단 초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을 상대로 편가르기에 성공, 비난 일변도였던 대내외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단번에 국면을 전환시켰다. 강경했던 공약들이 취임후 하나둘 후퇴하면서 불신을 초래했던 그가 이제는 `한다면 한다`는 인식을 전세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동안 우호적인 시각을 드러냈던 러시아에 대해 강경노선으로 갈아타는 등 기존 정책기조를 너무 쉽게 바꾸기도 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0~11일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서 서방국가들의 지지를 재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11~12일 러시아를 방문해 굳히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제 다음 타깃은 북한이다. 당초 호주로 향할 예정이었던 칼빈슨 항공모함 전단의 항로를 긴급하게 한반도로 틀었다. 북한이 오는 15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을 맞아 추가 핵실험 또는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하겠다는 이유였다. 아울러 핵심 참모들의 입을 빌어 북한이 다시 도발을 감행한다면 군사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제거를 위한 모든 옵션을 마련해 둘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한 옵션에는 경제적, 군사적 조치가 망라돼 있다. 틸러슨 장관도 이날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군은 북한을 포함한 위협이 되는 국가들에겐 시리아에 한 것처럼 대응할 수 있다”면서 “국제규범이나 국제협약을 위반하거나 다른 국가에 위협이 될 때 어느 시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한 채널을 동원해 중국이 북핵 문제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독자적으로 행동에 나서겠다며 경고도 잊지 않았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더해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촉 좋은 시장내 투자자들도 즉각 대응하고 있다. 달러화와 엔화값이 뛰고 금(金)값, 미 국채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반면 주식값은 하락하는 등 위험자산 회피,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모든 자산에서 나타나고 있다. 야마모토 마사후미 미즈호증권 외환담당 수석전략가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 경우 위험자산 회피심리가 강해지면서 잠재적으로 엔화값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점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