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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살아오면서 여러 책을 접했는데 다른 책은 한 번 읽으면 지나가는데 이 책은 옆에 두고 계속해서 꺼내보게 되는 책이다.”
30여년을 은행맨으로 살아오다 2015년부터 자산운용업계에 발을 디딘 민정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가 고른 책은 의외였다. 위인전으로 접했던 헬렌 켈러가 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사십여 페이지의 짧은 수필집을 골랐다. 민 대표가 헬렌켈러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정통 종합영어란 책에서였다. 앤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 켈러를 우물가로 데려가 펌프질을 하며 ‘물(water)’이란 단어를 알게 해준 장면을 봤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집에 꽂혀 있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민 대표는 “헬렌 켈러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사흘간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상상으로 적어놓은 책인데 여기에 있는 말들이 감동을 준다”며 “평상시엔 잊고 지내는데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이 책을 읽으면 너무 별거 아닌 것에 불만을 갖고 쉽게 좌절한다는 생각이 든다. 헬렌 켈러는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진지하게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 “불만만 가득한 사회, 강점들은 못 보게 해”
민 대표는 회사를 경영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헬조선’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사회 전반적으로 자존감이 낮고 불만이 커진 상황이지만 그렇게만 생각해선 우리가 가진 강점들을 보지 못한단 얘기다. 민 대표는 “헬렌 켈러의 수필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눈이 있지만 잘 보지 못한다. 당신의 배우자, 아내의 눈 색깔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대답을 못한다’란 부분이 있다”며 “눈이 안 보이는 헬렌 켈러는 눈의 색깔 등을 상상하려 애쓰는데 정작 눈이 보이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이런 것들을 잘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족하지 못하면 발전하지 못한다”며 “우리가 갖고 있는 강점, 장점 등을 인식해야 평소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멀쩡한 눈을 가졌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내 앞에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알지 못한단 얘기다.
그는 “경영측면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계속 1등만 하다보면 2, 3등으로 전락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2, 3등일 때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왜 이렇게 됐나, 경쟁력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 “결국 사람이 경쟁력”…이익 줄더라도 인력 발탁
그가 2015년 자산운용업계에 왔을 때 운용업계는 순탄치 않았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에선 몇 해 전부터 유능한 인력들의 이탈이 있었고 시원찮은 펀드 수익률에 자금도 빠져나갔다. 지난해는 사모펀드가 공모펀드 규모를 처음 추월한 해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패시브펀드가 전세계적으로 액티브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운용업계에선 악재에 악재였다. 여기에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운용사들은 수 백개로 급증했다. 펀드 자금은 빠져나가고 경쟁은 치열해졌다.
민 대표는 리서치센터를 주식전략본부로 승격하고 2011~2013년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의 ‘좋은아침’ 시리즈로 명성을 떨쳤던 김영기 주식운용본부장을 재영입했다. 이익이 줄어든 상황에서 유능한 인재를 뽑는 데 돈을 더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중소형주가 강세를 보였을 때 수익률이 저조했고 인력 이탈도 있었는데 그 끝물에 대표로 왔다. 그 영향을 1~2년간 받았다”며 “이익이 줄었을 때 운용사가 하는 것은 비싼 인력을 자르는 것이다. 그런데 운용업계는 사람이 경쟁력인데 그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유능한 사람을 뽑다보니 인건비는 더 나갔지만 성과는 있었다”고 말했다.
작년 대형주 강세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했고 모델포트폴리오(MP)를 복구하고 복제율을 높였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신한BNP파리바의 공모형 주식형펀드 수익률은 작년 한 해 동안 5.96%로 45개 운용사 중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작년 순이익은 126억4600만원으로 전년보다 절반 가량 줄었다. 그는 “운용성과가 이익으로 귀결되기까지는 최소한 1년에서 1년반이 걸린다”며 “그나마 작년 운용성과가 좋고 올해도 안정감 있게 성과를 내고 있다. 이익도 바닥을 치고 올라와 일 보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기필코 작년 이익을 넘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식형펀드는 자금이 유출되고 있지만 타 운용사에 비해 선방하고 있고 커버드콜펀드(주식을 매수하면서 콜옵션을 매도하는 전략으로 옵션 매도에 따른 프리미엄을 획득하는 운용구조) 등 혼합형 자금 유입도 꾸준하다. 작년 커버드콜펀드엔 1000억원 가량이 유입됐는데 올들어선 벌써 5000억원 가량이 들어왔다. 민 대표는 “이 펀드는 강세장을 보는 전략이 아닌데도 상품의 다양성 측면에서 고객들에겐 인기”라며 “월 1%씩 콜프리미엄 받으니까 1년에 12% 받으면 수익률이 하락했을 때도 방어막이 된다. 듣기론 현재 가입자 중 한 명도 깨진 사람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증시는 너무 디스카운트돼 있어 제값을 못 받았는데 현재는 어느 정도 가치를 회복하는 단계에 있다”며 “그러나 여전히 저성장 구조에 갇혀 있다보니 중위험, 중수익 전략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좋은아침’ 시리즈처럼 변동성을 크게 가져가면서 수익을 내는 전략도 필요하고 커버드콜펀드처럼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는 전략도 필요하단 게 민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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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산배분형펀드, 이탈리아 축구로 대응
민 대표는 운용업계가 사훈을 걸고 해야 할 것이 자산배분형펀드라고 말했다. 그는 “주식이나 채권 등 개별 자산만 갖고 승부하기 어렵다”며 “그래서 운용업계가 준비하는 게 자산배분형펀드”라고 설명했다. 그는 “각사별로 최적의 솔루션을 찾고 있는데 어떤 회사는 해외의 것들을 그대로 가져오고 어떤 회사는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는 자체적으로 개발하는데 기술제휴사인 BNP파리바와 협력해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민 대표는 이를 현대차에 비유했다. 현대차가 자체적으로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고 수입만 했다면 지금의 현대차는 없을 것이란 얘기다. 질 좋은 부품 등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이를 활용해 국산차를 개발해 결국 세계적인 자동차업체가 된 것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에게 맞는 자산배분형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BNP파리바은행 계열사인 마스(MAS, 멀티에셋솔루션)와 협력해 TDF(타겟데이트펀드)를 조만간 출시하는 등 하반기 중 자산배분형펀드에 대한 라인업을 새롭게 구축할 방침이다.
그는 자산배분형펀드를 축구와 비교했다. 축구에서 이기긴 이기는데 브라질 축구로 이길 것이냐, 이탈리아 축구로 이길 것이냐다. 그는 “브라질 축구는 골도 많이 넣고 반대로 골도 많이 먹는다. 반면 이탈리아 축구는 탄탄하게 경기를 운용해 골은 덜 넣는 대신 골도 덜 먹힌다”며 “자산배분형펀드는 은퇴한 노년층에게 적합한 상품이기 때문에 이탈리아식 축구를 하는 게 더 맞다”고 말했다. 그는 운용사에게 고객 신뢰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상시에 선량한 관리자로서 고객 자산을 자기 자산처럼 관리해야 한다”며 “단기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고객에게 각인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민정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이사는..
1959년생으로 배문고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 조흥은행에 입행해 은행원의 삶을 살았다. 운용업계와 연이 닿으려고 했는지 투자은행(IB)쪽 업무를 많이 했다. 주니어 때 홍콩지점에 근무하면서 국내 기업이 홍콩에서 외화를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고 이를 유통시키고 향후 상환하는 과정을 도맡아 담당했던 일을 가장 보람있게 꼽는다. 런던지점장, 국제영업부장 등 주로 해외쪽 업무를 담당했다. 신한은행과 통합된 이후엔 신한금융지주 전략기획팀장, 금융지주 전무, 부사장(CFO) 등을 역임했다. 2015년 3월에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초 2년 임기였으나 주식형펀드 수익률 개선 등 성과를 인정받아 1년 연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