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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합 전속고발권 폐지…수사권 조정에도 檢 특수수사 범위 더 커져

한광범 기자I 2018.08.21 16:18:00

수사권 조정 불구 특수수사 대상 오히려 확대
리니언시 도입으로 ''플리바게닝'' 사실상 첫발
''수사 남발''·''별건 수사'' 우려도 제기

박상기 법무부 장관(왼쪽)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정거래법 전속고발제 개편 합의문’에 서명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법무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21일 중대한 담합 사건에 대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검찰로서는 대기업에 대한 사정 권한을 더욱 강화하게 됐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는 분야는 경성담합(hardcore cartel)에 한정된다. 경성담합은 독점력 향상만을 목적으로 하는 담합을 지칭하는 말로서, 구체적으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19조(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 중 1호(가격답합)·3호(공급제한)·4호(시장분할)·8항(입찰담합)이 여기 해당된다.

아울러 경성담합 사건에 대한 전속고발권이 폐지됨에 따라 이와 관련해 검찰도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를 도입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자진신고자 1순위에 시정조치와 과징금, 검찰 고발을 면제해주고 2순위엔 50% 수준의 면제를 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검찰도 자진신고자에 대해 형사처벌 면제나 경감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양측은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 이유에 대해 “신규사업자의 시장진입 기회 자체를 박탈해 공정한 경쟁을 저해해 비효율을 소비자에게 그대로 전가하는 행위로 형사제재 필요성이 높다”며 “중대한 담합에 대해 적극적 형사제재를 해 담합행위를 근절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고 부연했다.

이번 합의안으로 검찰은 오랜 숙원이었던 전속고발권 일부를 폐지하며 대기업 수사에서 더욱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를 특수 수사 등으로 한정하기로 했지만, 이번 전속고발권 폐지로 특수 수사의 범위는 오히려 크게 넓어졌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리니언시를 도입하며 플리바게닝이라는 또 다른 숙원도 일부 해소했다. 플리바게닝은 검찰이 피의자와 협상을 통해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경감하거나 조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피의자의 자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은 오랫동안 제도 도입을 요구해왔다.

이날 서명식에 참석한 법무부 관계자는 “리니언시와 플리바게닝은 다르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한 법조계 인사는 “담합 사건의 특성을 고려하면 리니언시는 불가피하지만 검찰로서는 이를 사실상 플리바게닝처럼 이용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검찰의 더욱 강력해진 권한에 대한 우려도 제기한다. 공정위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공정위가 엄중한 경우에 한해 고발을 했던 것과 달리 검찰로서는 외부의 고소·고발로 인한 수사 착수가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담합 사건의 경우 검찰은 주로 공정위 자료를 기반으로 수사에 임했다”며 “경쟁 제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갑질기업’ 수사가 막히면 결국 별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이날 서명식에서 ‘국민경제에 심대한 피해를 초래하거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큰 사건’에 한해 검찰이 우선 수사하고, 공정위와 협의해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시장에 대한 형벌권 발동은 적정하고도 합리적인 선에서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절제를 강조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공정위와 검찰은 이중조사로 인해 기업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검찰과 공정위 사이의 협력을 약속했다.

검찰은 오래전부터 전속고발권 폐지를 강하게 요구했다. 2013년 고발요청권 범위를 확대한 데 이어 2015년엔 서울중앙지검에 공정거래조세조사부를 신설해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수사 의지를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전속고발권 폐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대통령 집권으로 전속고발권 폐지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당시 공약집에는 ”피해를 입은 누구든지 고발할 수 있도록 해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적시돼 있다. 이는 공정위의 기업 담합 등에 대한 행정제재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었다.

당초 전속고발권 폐지에 거부감을 드러내던 공정위는 전·현직 위원장들이 줄줄이 취업 비리로 재판에 넘겨지며 반대 동력을 상실했다. 퇴직 간부를 통한 공정위와 기업 간 유착 의혹이 더욱 강하게 제기된 것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공정위 전 위원장 3명 등 총 12명을 재판에 넘기며 ”국가 권력기관 자체가 조직적으로 채용 비리를 양산했다“며 ”막강한 권한을 내세워 민간 기업들을 마치 산하기관처럼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도 이날 오전 전속고발권 일부를 폐지하고 담합행위에 대해 과징금 한도를 2배로 상향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기로 하며 법무부·공정위 합의안에 힘을 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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