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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권소현 정철우 기자] 미국 스포츠용품 업체 언더 아머가 자사 모델인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의 선전에 웃었다가 다시 울었다. 펠프스가 한 스포츠 잡지 표지모델 촬영에 경쟁사인 나이키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는 바지를 입었기 때문이다. 최근 스포츠 용품 시장에서 뿐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언더 아머에 거센 도전을 받고 있었던 나이키는 함박웃음이다.
◇돈 들였는데 광고효과는 나이키가…속 쓰린 언더아머
리우 올림픽에서 수영 5관왕에 오른 펠프스는 여자 수영 4관왕인 케이티 러데키와 체조 4관왕인 시몬 빌스와 함께 17일(현지시간) 바라 올람픽 파크에 위치한 메인 프레스센터에서 15분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 표지 사진을 찍었다. 이 잡지는 1800만명 이상이 구독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 잡지다. 우수한 성적을 거둬 이 잡지 표지에 실린 선수가 팀이 다음 시즌 부진한 성적을 낸다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징크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영향력 있는 매체다.
여기서 펠프스가 착용한 나이키 바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펠프스는 지난 2010년 언더 아머와 후원계약을 체결한 후 지금까지 언더 아머의 대표 모델로 활동해왔다. 자신의 후원사 제품이 아닌 경쟁사 제품을 입은 데다 검은 바지에 새겨진 하얀색 나이키 로고가 두드러져 나이키는 간접 광고 효과를 얻게 됐다. 에이펙스 마케팅 그룹은 이 사진 한장으로 나이키는 45만3000달러 규모의 브랜드 노출 효과를 얻을 것으로 분석했다.
언더 아머와 펠프스의 소속사인 옥타곤 월드와이드는 공식적으로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나이키가 미국 대표팀을 후원하고 있고, 미국 올림픽위원회가 선수들에게 나이키 의상을 입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펠프스는 나이키 의상을 입어야 하는 미국 올림픽위원회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가 왔고 프레스센터 역시 올림픽 공식 행사장소긴 하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3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 올림픽위원회가 잡지 사진 촬영에서까지 이같이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보도했다. 실제 촬영장을 담은 영상에서 펠프스는 바지를 제외하고는 나이키가 아닌 다른 브랜드를 착용했다. 신발은 언더 아머 제품이었고 상의는 영국 브랜드 테드베이커의 폴로였다.
함께 사진을 촬영한 러더키는 상·하의 모두 나이키 제품을 입었지만 시몬 빌스는 언더아머르 경기복을 착용했다. 빌스는 나이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다만 러더키와 빌스의 의상에서는 브랜드 로고가 노출되지 않아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옥타곤 월드와이드의 피터 칼리슬은 “올림픽 기간 동안에는 출전한 선수들이 언제 무엇을 입어야 하는 지에 대해 상당히 복잡한 규정과 계약이 있다”며 “이런 규정을 분석하고 해석하고 따르는 것은 늘 도전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기업 후원이 곧 돈 줄…로고노출 민감한 문제
하지만 펠프스의 경쟁사 로고 노출은 스포츠 마케팅의 세계에서 이례적인 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명 운동 선수와 에이전트 매니저, 마케팅 팀은 언제 무슨 옷을 입고 어떻게 브랜드를 노출할 것인지에 대해 치밀하게 전략을 짠다. 그만큼 대규모 후원금을 받기 때문이다.
유명 스포츠 선수들은 나름대로 기지를 발휘해 후원 기업을 후방지원하기도 한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로 참가한 마이클 조던은 금메달 시상식에서 온 몸에 성조기를 휘감고 나왔다. 애국자로 보였겠지만 당시 미국 농구 대표팀의 유니폼 후원사가 리복이었고, 나이키의 후원을 받고 있었던 조던은 성조기로 리복 로고를 가린 것이다.
리복과 필라의 마케팅 담당 임원을 역임했던 호웨 버치는 “우리가 후원하려 했던 운동선수가 공개 포럼에서 경쟁사의 제품을 착용하고 나온 것을 보고 계약을 끝낸 적도 있다”며 “선수들은 이런 부분에 상당히 신경쓰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번 펠프스의 나이키 바지 착용 논란은 두 기업이 스포츠 마케팅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부각됐다. 나이키의 후원을 받던 농구 선수 스테판 커리가 언더 아머와 손을 잡으면서 두 업체가 기싸움을 벌인 바 있다.
나이키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를 내세워 성장했다가 우즈의 추락과 함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반면 언더 아머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와 계약을 맺어 잇달아 대박을 터뜨렸다. 스티븐 커리를 비롯해 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조던 스피스, 워싱턴 내셔널스 간판타자인 브라이스 하퍼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펠프스의 나이키 바지 작용으로 배가 아프게 됐다.
릭 버튼 전 미국 올림픽위원회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나이키는 이 사진은 회사 벽에 붙여놓을 테고 언더 아머는 아마 문 뒤에서 화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 스포츠 용품 업체들은 선수 후원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브랜드 홍보에 나선다. 특히
◇한국은 아직 미미…갈등 소지 적어
한국 프로 스포츠에도 스폰서 기업과 선수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스포츠 마케팅 시장이 미주 지역이나 유럽 등 스포츠 강국에 미치지 못한 탓에 아직은 찻잔 속에 태풍으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스포츠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김연아(피겨 스케이팅) 박태환(수영) 손연재(리듬 체조)등은 각기 개인 스폰서 계약을 맺고 적지 않은 금액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용품 지원 보다는 기업 광고 위주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스포츠 마케팅과 관련된 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적었다. 이들을 제외하곤 해당 종목의 스타가 없었기 때문에 스포츠 용품 계약을 따로 맺더라도 대표팀과 충돌할 필요가 없었다. 대표팀 단위 계약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단체 종목의 양대 산맥인 축구와 야구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축구는 유니폼과 트레이닝복 계약은 대표팀 단위로 맺지만 스파이크 계약은 개인에게 권리를 돌려주는 경우가 보통이다. 야구는 일괄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스파이크나 글러브 등의 장비를 놓고 갈등이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이 역시 계약 단위가 10억원 미만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업체는 컴플레인을 제기하고 선수측은 양해를 구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