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하지나 김영환 기자] 진경준 검사장,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등 잇따른 고위공직자 비리가 발생하면서 야권을 중심으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일부도 여기에 동조하면서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오랜기간 공수처 설치가 무산된만큼 이번에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적 공감대 타고, 野 이어 與 일부 동조
21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에 관한 제정법률안’ 발의를 시작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민주주의 회복 TF에서 공수처 설치를 검찰개혁 과제로 제시했다. 국민의당도 이용주 의원을 팀장으로 하는 공수처 법안준비 TF를 구성해 법안 마련에 나섰다.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공조를 통해 다음주께 단일한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여기에 새누리당 일부 비박계 의원들도 공수처 설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검찰은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쳐 한 점 의혹을 남겨서도 안 된다”며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공직사회 부패를 척결하려면 공수처 신설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정병국 의원도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우 수석 의혹에 대해 “청와대 자체이든 사정기관이든 철저하게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야권은 현직 검사장이 구속된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오랜 기간 논란이 됐던 공수처를 설치하는데 적기라고 보고 있다. 이용호 국민의당 원내대변인은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에게 ‘지금이 공수처 신설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며 여야 3당이 공동발의를 제안했지만 아직 답이 없다”면서 “하지만 법조비리 의혹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에서도 공수처 신설 제안을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더민주, 각계 전문가 포함한 공수처 신설안 발표
법조계에서도 검찰 자정 노력만을 신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고위공직자를 둘러싼 각종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정형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공수처는 검찰 비리의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다”면서 “검사를 수사하려면 결국은 자기들이 수사할 수밖에 없는데, 상급 기관을 만들지 않으면 이 조직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더민주가 공개한 공수처 신설안은 처장의 자격조건을 일반에 개방한 것이 특징이다. 법조인으로 제한하지 않고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자격을 넓혔다. 관련 TF팀장을 맡고 있는 박범계 의원은 “전관예우와 법조인들만의 제식구 감싸기 등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처장과 특별수사관의 임명도 인사위원회의 추천을 받는 것으로,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성을 강화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해 검증 시스템도 마련했다. 특별수사관의 경우 법조경력 5년 이상으로 자격을 두되 현직 검사가 과반을 넘지 않도록 했다. 수사 뿐만 아니라 기소와 공소유지 업무도 하며, 수사 대상 역시 전직 대통령부터 청와대 선임행정관까지 그 대상 범위를 크게 넓혔다.
◇헌법 개정·수사 대상 논란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수처 설치에 대한 현실적인 한계점도 언급된다. 무엇보다 공수처를 설치하려면 영장청구권이 검찰에게 있다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특별법을 하면 헌법에 명시된 영장청구권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면서 “공수처가 있더라도 영장청구를 하려면 검찰청에 부탁을 해야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공수처에 기존 검찰조직을 포함시키느냐를 비롯해 조직 구성의 적정성과 그에 따른 독립성 침훼 가능성, 그리고 수사 대상과 범위 등 기존 검찰과의 권한 배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장 고위공직자 대상 여부에 국회의원 포함 여부는 논란거리로 부각될 전망이다.
또한 검찰·경찰조직외에 또다른 권한독점 조직 신설로 인한 옥상옥(屋上屋) 논란도 제기된다. 하창우 대한변협회장 또한 “공수처가 부패하면 누가 수사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면서 “세계적으로 공수처를 두는 나라는 찾기 어렵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용주 의원은 “검사의 영장청구권과 관련한 헌법 개정 문제는 공소처에 검사를 파견하는 방식으로 법률적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면서 “다만 공수처 신설은 단순히 검찰의 권한을 분산시키려고 보기보다는 내부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특정사안에 대해서 수사 담당하는 부서를 별도로 둬야 하지 않겠냐는 정도로 해석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