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異야기]"삼둥이 모자, 니트업계 샤넬로 만들겠다"

김혜미 기자I 2015.03.30 17:50:15

김외정 루피망고 대표 인터뷰
"꾸준한 디자인 개발 등으로 사업 꾸준히 확대할 것"

[뉴욕= 이데일리 김혜미 특파원] ‘자고 일어나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는 말은 연예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겨울, 한국에서 대박을 친 액세서리 아이템 ‘루피망고(Loopymango)’ 모자의 주인공인 김외정(48) 대표는 지난달 22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처음 동업자에게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을 때는 누가 200달러(한화 약 22만원)에 뜨개질 키트를 사겠느냐며 말렸어요. 하지만 제가 너무 하고 싶어서 안팔려도 상관없다며 동업자를 설득해 매장 안쪽에서 조그맣게 시작했죠. 그런데 손님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하나 둘씩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하면서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그러다 작년에 한국 연예인들이 하나 둘 루피망고 모자를 쓴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역시 누군가 알아주기 시작하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김외정 루피망고 대표


`엄정화 모자`에 이어 `삼둥이 모자`까지, 한 때는 `가체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루피망고 모자와 털실이 올 겨울 국내 최대 히트상품이었다는 데 이견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사실 루피망고에서 나오는 제품은 담요와 머플러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모자가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인터넷 쇼핑몰에는 루피망고 모자를 흉내낸 저렴한 값의 ‘짝퉁’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국에서야 단시간에 일순간 인기몰이를 하게 됐지만 루피망고의 역사는 사실 그리 짧지 않다. 일본 동경외대에서 일본어 언어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약 12년간 일본에서 통·번역일을 하다 작은 퓨전 레스토랑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뉴욕에 가보고싶다는 생각에 지난 2001년 모든 것을 접고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고, 호기심에 독학으로 뜨개질을 시작하게 된 그는 뜨개질이 평생의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뜨개질에 한창 재미를 붙인 그는 어느 날 뉴욕 패션스쿨 FIT의 단기 실크페인팅 강좌를 듣게 됐고, 이 곳에서 지금의 동업자인 아나 풀번마커를 만났다.

하지만 창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난 2004년 12월 뜨개질을 연상시키는 단어인 ‘루프’와 따뜻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망고’의 합성어로 탄생한 ‘루피망고’ 가게에서 처음엔 자신이 만든 뜨개질 제품과 동업자의 판화를 판매했지만,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흐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극심한 경기 침체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김 대표는 맨해튼 이스트빌리지에 있던 가게를 브루클린으로 옮겨 여성복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뜨개질에 대한 열정을 접을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동업자를 설득해 지난 2009년 다시 소호로 이전하는 동시에 컨셉을 바꾸기로 했다. 소호는 특히 패션에 민감하고 감각적인 사람들이 많은 곳이어서 일반적인 뜨개질 제품으로는 고객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그래서 뜨개질 관련 제품을 판매하고 방법을 가르쳐주는 동시에 바쁜 도시인들이 빠르게 세련된 제품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를 고민하던 그가 떠올린 것이 바로 굵은 실과 바늘을 한 세트로 묶어 판매하는 키트(kit)다.

“뉴욕에서는 보통 뜨개질 하는 분들이 실을 사기위해 업타운에 갔다가 다운타운에 가는 등 여기저기 찾아다녀야 하거든요. 그리고 하고 싶은 디자인과 실을 발견한 다음에는 또 다시 바늘을 사러 가야 하고요. 그래서 도시에 사는 손님들이 편리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뜨개질 제품이 뭘까를 고민하다 나온 것이 바로 이 키트입니다.”

새끼 손가락 굵기의 털실과 바늘을 한 데 묶은 키트를 처음 개발한 시기는 지난 2011년이었다. 굵은 실로 제작하는 제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카페트 같은 생활용품에 한정됐을 뿐 품질을 높여 사람이 착용하는 제품으로 시도한 경우는 없었다. 당시 불경기를 맞아 뜨개질 수요가 늘고 있던 차에 두 시간 정도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키트는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뜨개질 강좌를 동시에 진행하자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인기를 끌게 됐다. 초보자의 경우엔 2시간 정도면 모자를 하나 뜰 수 있고, 익숙해지면 30분 만에도 가능하다.

가격이 다소 비싼 것 같다는 질문에 김 대표는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현재 루피망고 키트를 제작하는 공장의 직원은 총 9명으로, 1개 키트를 제작하는 데 드는 시간은 약 30~40분 정도다.

그는 “한 톨(125야드)을 만드는 데 메리노울이 약 2.5파운드 들어가니까 무게가 좀 나간다”며 “그래서 원가가 좀 있고, 하나 제작하는 데 한 명이 30~40분 정도 걸려서 수작업으로 만드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루피망고의 전체 매출규모는 150만달러(약 16억5000만원)에 이르렀다. 특히 지난해 4분기의 경우 전체 매출 가운데 70%를 한국에서 벌어 들였다. 김 대표는 “특별히 한국인을 생각해서 만든 것은 아니었는데, 나한테 맞는 것을 만들다보니 한국인들에게 인기를 끈 것 같다”라며 “한국인들은 특히 뒤통수가 없어서 모자가 자꾸 벗겨지는데 루피망고는 도톰해서 잘 안벗겨지고 뒤통수도 예뻐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짝퉁’과 관련해 김 대표는 큰 인기를 반영하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키트를 구입해 직접 떠서 판매하는 경우 실은 루피망고이지만 본사 차원에서 품질관리가 되지 않아 실질적인 루피망고 제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일일이 대응이 어려워 본인들의 양심과 소비자들의 인식에 우선 맡겨두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현재 상표권 등록을 진행하는 등 제대로 사업 형태를 갖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워낙 단기간에 크게 인기를 끌다보니 금방 인기가 식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러시아와 영국, 호주 등에서 이전부터 꾸준히 판매가 돼왔고, 신제품 개발을 통해 열풍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이번 시즌에 2개 디자인이 새로 출시됐다.

김 대표는 “앞으로 루피망고를 ‘나도 하나 갖고 싶다’는 이미지로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가끔 뜨개질을 하지 않는 연로한 남자분들이 그저 털실이 갖고 싶어서 사간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며 “지금은 모자와 스카프 등 액세서리 중심이지만 앞으로는 스웨터 같은 의류 쪽으로도 영역을 확대하려고 한다. 니트웨어계의 샤넬로 키워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외정 루피망고 대표(오른쪽) 및 아나 풀번마커 공동대표(왼쪽).


◇김외정 대표는

1968년생으로 1994년 동경외대 일본언어학과를 졸업했다. 1998년 일본에서 퓨전 한식 레스토랑 ‘세이안’을 개점, 직접 경영과 셰프를 맡아 약 3년여 동안 운영하다 지난 2001년 10월 말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2004년 12월 지금의 동업자인 아나 풀번마커와 함께 ‘루피망고(Loopymango)’를 창업했으며 2012년 지금의 굵은 실(Big Loop)로 제작하는 키트를 처음 판매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갤러리아 백화점 내 플레이울(Playwool) 팝업 스토어에 입점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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