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로 유명한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가 보톡스를 만드는 아일랜드 제약사 앨러건을 사들여 몸값만 400조원 가까운 세계 최대 제약사가 탄생한다.
◇헬스케어업계 사상 최대 딜
화이자와 앨러건이 최소 1500억 달러(약 173조원) 이상 규모의 인수합병(M&A) 안에 합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두 회사는 이사회 승인을 받았고 23일 합병을 공식 발표한다.
합병 비율은 앨러건 주식 1주당 화이자 주식 11.3주와 약간의 현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지난 21일 종가 기준으로 주당 약 364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16.4%의 웃돈(프리미엄)을 얹은 금액이다.
이는 헬스케어업계 사상 최대 규모면서 올해 최대규모 M&A다. 지금까지는 세계 1위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가 경쟁사 사브밀러를 1050억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거래가 올해 이뤄진 M&A로서는 최대다.
화이자는 미국 2위 제약사다. 시가총액이 2180억 달러 규모다. 앨러건 시총은 1130억달러 수준이다. 화이자가 앨러건을 인수해 두 회사가 합치면 시총 330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 제약사가 등장하는 셈이다. 합병회사의 매출은 600억달러가 넘는다.
◇‘절세용 해외이전’…규모의 경제 효과
화이자는 지난해부터 앨러건에 러브콜을 보냈다. 이는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다.
앨러건은 미국에 비해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 더블린에 본사를 두고 있다. 미국의 평균 법인세율이 35%인 반면 아일랜드는 세계 최저 수준인 12.5%에 불과하다. 이언 리드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법인세율이 지나치게 높아 외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화이자의 지난해 법인세율은 약 25%다. 대형 제약업체 가운데 가장 높다.
화이자는 이번 계약을 통해 법인세율을 20%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실제 앨러건은 지난해 약 15%의 법인세율을 적용받았다. 기술적으로는 아일랜드가 본사인 엘러간이 뉴욕에 있는 화이자를 인수하는 형태로 M&A가 이뤄진다. 절세용 본사이전을 막는 미국 재무부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절세 외에도 주름제거 치료제 보톡스와 안구건조 치료제 레타시스를 포함해 앨러건 인기상품들이 화이자 판매상품에 포함돼 새 성장동력을 확보하게 된다. 화이자는 경쟁력있는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기 위해 올해 2월 복제약 전문업체 호스피라를 168억달러에 사들이기도 했다.
또 규모의 경제를 통해 비용절감이나 연구개발(R&D)에 대대적 투자가 가능해졌다.
◇연말까지 M&A 완료…제약업계 통합 가속화
두 회사는 올 연말까지 M&A 절차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리드 화이자 CEO가 합병 회사를 이끌며 브렌트 손더스 엘러간 CEO는 2인자로 이사회 의장과 최고운영자(COO)가 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두 회사는 합병후 고부가가치 사업인 특허약품 판매와 제네릭(복제약)으로 분할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다만 두 기업의 덩치가 워낙 커 세계 각국에서 반독점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거래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게 부담이다. 미국 당국이 조세회피용 해외이전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WSJ는 이번 거래가 제약업계 통합 움직임에 불을 지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오바마케어가 시작되면서 업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등 헬스케어 업계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간 규모의 제약사간 합종연횡이 더욱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