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의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가 오히려 망중립성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망이용대가란 없고 낼 필요도 없다)’ 소송에서 1심때 망중립성을 근거로 논리를 폈다. 2심에서는 망의 유상성과 망중립성은 별개임을 인정했지만, 1심까지만 해도 자유롭고 혁신적인 인터넷 생태계를 위해서는 망중립성이 유지돼야 하고 SK브로드밴드에 망이용대가를 내는 것은 망중립성에 반한다는 논리를 폈다.
9일 한국미디어정책학회(대표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가 개최한 ‘공정하고 자유로운 인터넷 생태계: 당면과제와 해결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온라인 특별대담에서 로슬린 레이튼(Roslyn Layton) 박사(미 포브스지 시니어 칼럼니스트·덴마크 올보르대 방문 연구원)는 “아이러니가 있는 상황”이라면서 “넷플릭스의 OCA(내재화된 CDN)는 자체가 게이트키퍼 역할을 한다. 배타적인 콘텐츠 캐시(cashe server)를 만들어서 넷플릭스만 이용한다. 여기선 디즈니+ 등은 이용못한다. 그럼에도 SK브로드밴드에 OCA 설치를 요구하면서 (망이용대가) 보상은 안 하는 것은 정말 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망중립성이란 통신사업자(ISP)가 인터넷으로 전송되는 데이터의 트래픽을 내용이나 유형, 제공사업자 등에 관계없이 차단·제한·차별하지 않고 동등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즉, 웃돈을 받고 트래픽 전송 순위를 차별해선 안된다.
|
하지만, 통상적으로 망중립성은 ISP에 주어진 의무여서 콘텐츠업체(CP)인 넷플릭스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도로(망)에서 물건을 많이 실은 트럭(넷플릭스 등)이 돈을 더 준다고 먼저 내 차보다 가게 하는 것은 망중립성 위반이나, 물건을 많이 실은 트럭이 지나려면 도로를 넓혀야 하니 그에 대한 비용을 청구하는 것은 위반이 아니다라는 지적도 있다.
조대근 법무법인 광장 전문위원(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방통위 인터넷상생발전협의회 위원)은 이날 특별대담에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망중립성과 넷플릭스에 과금하면 안 된다는 건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정현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넷플릭스의 OCA 자체가 망중립성 위반이라는 레이튼 박사 주장은 흥미롭다”면서도 “이용자 입장에서는 OCA로 가까운 곳에 콘텐츠를 올려두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왜? 레이튼 박사 “새로운 인터넷 공정성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레이튼 박사는 넷플릭스가 무기로 썼던 망중립성 문제를 끄집어 낸 걸까. 그의 말을 보면, 초기 인터넷 때와 달리 트래픽이 큰 동영상 등의 콘텐츠가 전달되는 현재의 환경에서는 넷플릭스도 트래픽 줄이기를 위해 뭔가 작업(OCA)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망중립성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공정성 논의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레이튼 박사는 “망중립성은 각국의 법률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는데, 이게 상호접속이라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건 아니다”라면서 “1970년대, 인터넷 초기에는 이메일 정도가 킬러 앱이었지만 지금은 대용량 동영상이 오간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인터넷 공정성 원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넷플릭스가 대용량 콘텐츠로 대역폭(도로)에 큰 부하를 일으킨다. 같은 도로에서 다른 CP들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차지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넷플릭스가 접근 자체가 무료여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정말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레이튼 박사는 망중립성의 원칙 중 하나인 콘텐츠 차단 금지에 대해서도 색다른 견해를 밝혔다. 그는 “망중립성의 원칙은 모든 콘텐츠를 동등하게 취급해 전송을 막지 말라는 것인데, 오히려 표현의자유를 위반할 우려도 있다”면서 “이는 정부가 강제할 게 아니라 개개인의 개별 행위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률적으로 동일하게 차별없이 콘텐츠를 중단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어떤 개인은 혐오표현이나 아동 포르노 등을 보고 싶지 않다. ISP들이 걸러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알아서 거르지 못하게 하는 게 아니어야 한다. 망중립성이 곧 표현의 자유와 동등한 표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최한 한국미디어정책학회 박천일 회장(숙명여대 교수)은 “넷플릭스는 개방성을 원심력으로 발전한 혁신기업으로 출발했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행태는 레거시 미디어 모습으로 회귀하는 건 아닌지 반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넷플릭스의 기업문화는 자유와 책임인데 사회적 책임 역할은 축소되는 건 아닌지 우려되기도 한다”고 부연했다.